▲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최근 오랜만에 만난 동갑내기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자신이 아는 동생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동생은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면 공항 내 출입국사무소에서 탑승객들을 심사하는 업무를 맡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갑질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비행기 탑승을 위해 수속을 하려는 사람들은 출입국 심사 직원들에게 절대 갑질을 하지 않는다며, 특히나 본인이 여성으로서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직무라는 것이다. 직업을 택하는 데 가장 절박한 이유일 수밖에 없다는 당사자의 절박함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청년들이 말하는 안전한, 그리고 안정적 일자리라는 단순한 명제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보통은 높은 임금과 정규직이 전제조건이라고 답하기 마련이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수많은 권리가 담겨 있다. 다치지 않을 권리를 비롯해 성적·언어적·신체적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을 권리는 노동자로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또한 해당 사업장이 성장유망한 일자리인지, 노동자 개인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회사에 기반이 마련돼 있는가도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청년들에겐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문제다. 이러한 일터문화와 시스템이 안착돼 있는 사업장일수록 노사관계가 합리적으로 작동한다. 근로기준법 역시 제대로 지켜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일자리를 얻을 권리라는 것이 아직까지도 돈을 버는 수단 정도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기업 청년노동자에게 상당한 예산을 쏟는 ‘내일채움공제’는 단기적으론 자산마련 차원에서 일정 정도 유의미하지만, 개개인에게 노동의 다차원적 권리를 정책적으로 어떻게 보장해 나갈 것인가라는 철학에는 미치지 못한다. 특히 전반적인 사회안전망 또한 부실하기에, 많은 청년들이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성이라도 보장되는 대기업 혹은 공공부문 정규직 같은 '상위 20% 일자리'에 진입하는 것을 현실적 목표로 두고 있다.

최근 16개 조직이 참여하는 중소기업단체협의회가 ‘청년 스마트일자리 프로젝트’ 선포식을 개최했다. 많은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해 청년실업과 중소기업 구인난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는 미스매치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의 양적 증대에만 집중했던 과거 채용운동과 달리 중소기업 일자리를 임금·복지·워라밸 등 청년층이 중시하는 스마트한 일자리로 개선해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격려사를 하러 온 이낙연 국무총리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고를 때 고려하는 대표적 5개 요소로 임금·복지 수준·성장 가능성·작업장 환경·조직문화를 꼽기도 했다.

하지만 추진 방향을 들여다보면 우수기업 채용박람회를 연다든지, 건강한 일자리 가이드 플랫폼을 만들어 중소기업 스스로가 자가진단을 한다든지, 대국민 중소기업 인식개선을 위한 광고를 더욱 때린다는 수준이다. 이러한 정책들에 예산을 쏟는다고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마음이 과연 중소기업으로 향할까? 이것이 청년들이 말하는 스마트일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로드맵인가?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보여주기식 정책은 지난 정권에서도 지겹도록 봐 왔기에 별다른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청년일자리 정책의 키를 잡고 있는 중앙정부와 고용·임금을 책임져야 할 기업에 보다 근본적으로 따지고 싶다. 청년들이 바라는 일자리는 곧 헌법과 노동관계법상, 그리고 역사적으로 합의된 노동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일자리다. 국제적으로 합의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현재까지도 비준하지 않고, 연간 노동시간 2천시간대를 기록하는 현실에서 탄력근로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정부와 기업이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떠드는 얘기는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청년일자리 문제와 노동기본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heol37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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