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과로사OUT공동대책위원회·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해태제과 여성 노동자들은 1979년 하루 8시간 노동 쟁취 투쟁을 벌였다. 당시 이들은 보통 하루 12시간씩 주 6일, 거기에 더해 격주 한 번씩 18시간 연달아 일하는 ‘곱빼기 노동’을 하고 있었다. 뒤늦게 노동법상 기본 노동시간이 8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이들의 구호는 "하루 8시간 노동 쟁취"가 됐다.

끔찍한 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폐지하고자 싸웠던 이들의 구호가 "하루 8시간 노동"이었던 점에 주목한다. 노동자의 몸과 마음은 고무줄이 아니기 때문에 한 주간, 한 달간, 심지어 3개월이나 6개월 평균으로 노동시간을 얘기할 수 없다. 평균을 들먹이는 것은 기계나 상품 원료처럼 노동자 역시 생산요소 중 하나로 보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 조선옥 보좌관의 매일노동뉴스 4월15일자 15면 기고 글(주 52시간 안착 위해 탄력근로제 확대 불가피)이 바로 이렇다. 조선옥 보좌관은 ‘경영자’ 관점에서 노동시간을 바라보며,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가 가져올 효과를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다.

먼저 조선옥 보좌관은 탄력근로제가 확대되더라도 주 최대 52시간제 시행효과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투입한 노동시간과 가능한 생산량을 6개월간 ‘평균’한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 변경한 제도에서 일해야 할 노동자 입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3개월 동안 매주 64시간씩 일하고, 다음 3개월 동안 매주 40시간 일한다고 해서 노동자가 받는 피로 역시 6개월 평균한 최대 주 52시간만큼만 쌓이는 것이 아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면 3개월 연속, 심지어 6개월 연속 매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왜 말하지 않는가?

바로 이 때문에 과로사 증가를 우려하는 것이다. ‘평균적인’ 노동시간이 과로에 해당하지 않아도, 최근의 급격한 노동시간 증가로 과로사한 사례에는 의사·건설노동자·자동차 부품회사 생산직 노동자·은행 영업사원·철도 정비노동자·통신설비 회사 사무직 직원 등 매우 다양한 업종과 직종의 노동자가 포함된다. 발병 전 1~7일 사이의 노동시간이 발병 전 8~30일 사이의 주당 노동시간보다 10시간 늘어날 경우 뇌심혈관질환 위험은 45%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조선옥 보좌관은 또 연속휴식제에 대한 비판 역시 극단적이라고 일축한다. 현재 근로기준법으로는 하루 최대 20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밤새 일하면 20시간이다. 중간에 식사시간이라도 제하면 아침 6시에 퇴근하게 된다.

연속휴식제는 그러고 나서 당일 저녁 5시에 다시 출근할 수 있도록 ‘보호’할 뿐이다. 이런 일이 일주일에 한 번 벌어지므로 극단적인 비판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주 5일 동안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고도 주말에 4시간 더 일해야 하는 탄력근로제 기간에 연속휴식제가 무슨 도움을 주는가?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자정에 퇴근하고, 다음날 출근을 2시간 늦춰 주는 것에 감사하라는 것인가?

조선옥 보좌관은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고 과로사를 막기 위해서도 주 최대 52시간제 정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근로기준법은 주 52시간제가 아니라 주 40시간, 하루 8시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왜곡하지 말라.

주 52시간제가 아니라 주 40시간 실현으로 나아가려면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향의 탄력성을 줄이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의 탄력성을 높여야 한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모든 산업에 연장근무를 일률적으로 허용하는 법은 없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명분을 가지려면, 모든 산업에 일률적으로 주당 12시간 연장근로를 인정해 저들 말대로 ‘주 52시간제’를 만드는 근로기준법 53조를 먼저 폐기해야 한다. 이미 주당 12시간이나 노동시간을 늘리는 탄력성이 보장되고 있으므로, 오히려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하루 10시간 초과근무를 금지하는 등의 탄력성 제한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산업안전보건법상의 과로 해소조치 운운에 대해 의사로서 한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 과로사 예방조치 중 하나로 의사가 과로사 위험 노동자를 면담하는 제도가 있다. 법적으로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한 상황에서, 의사가 과로사 위험 노동자를 면담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과로사 예방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조치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단축이자 제대로 된 규제와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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