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노조

노조에 가입했다가 무더기 계약해지당한 농협물류 소속 화물기사, 임금체불을 당해도 '사장님' 신분 때문에 고용노동부에 진정도 넣을 수 없는 건설기계 노동자, 업체의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받고 요금이나 수수료에 대한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퀵서비스·대리운전기사들….

회사에 종속돼 일하면서도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2만여명이 지난 13일 대규모 집회를 열고 정부와 국회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우리도 노동자"라며 "노동 3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문재인 정부, 노동기본권 보장 약속 지켜야"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 도로에서 '특수고용 노동자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에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ILO 핵심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과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를 비준하라고 요구했다. 국회에는 근로자 범위를 넓히는 노조법 2조 개정을 촉구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건설기계 노동자·학습지 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택배기사처럼 사업자등록증을 가졌지만 특정회사 업무지시를 받고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보수·서비스 수수료를 적용받으면서 사실상 노동자처럼 일하는 노동자다. 형식상 사업주라 근로기준법·노조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용역·도급·위탁·운송계약 형태로 노무를 제공하고 있다는 이유다.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고용보험·산업재해보상보험법도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 건설노조

플랫폼 사업 확장으로 배달노동자나 프리랜서처럼 새로운 특수고용 노동자는 끊임없이 생겨 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이 공동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특수고용 노동자는 최대 221만명이나 된다. 전통적인 특수고용직보다 종속성이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자영업자는 아닌 새로운 형태의 특고 노동자도 55만명이나 된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같은 노동자인데도 앞에 '특수'라는 글자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노조를 만들 수도 없고, 일하다 다쳐도 보상받을 수 없으며, 그날 잘려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목소를 높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일하는 사람 모두의 권리보장을 약속했지만 집권 3년차인 지금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4월 총파업·총력투쟁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조법 2조 개정, 노조법 개악을 막겠다"고 주장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노동자 범위 확장한 노조법 개정안 처리 한목소리

민주노총이 국회 통과를 요구하는 노조법 개정안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발의했다. 개정안은 노조법 2조(정의)에서 '근로자' 범위를 "계약형식과 관계없이 다른 자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로 개념을 넓혔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노조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 의장인 이영철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노조할 권리를 요구하다 구속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철탑에 올라가고, 노조에 가입했다가 계약해지되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바꿔 내자"며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받을 수 있도록 투쟁하자"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특수고용 노동자 투쟁선언문'에서 "문재인 정부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지난 2년 동안 허송세월하고 있다"며 "ILO 100주년인 올해 반드시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도 노동자"라는 손피켓과 펼침막을 든 참가자들은 퀵서비스 오토바이·택배차량·레미콘·트레일러를 앞세우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 노동과세계 정종배

한편 건설노조 조합원 1만2천여명은 이날 오후 남대문 삼성본관 앞에서 '건설노동자 총력·총파업 투쟁 결의대회'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조계사 앞 도로에서 화물노동자 5천명이 모여 총력투쟁 선포대회를 열었다. 대리운전노조는 대리운전 프로그램 회사인 '로지소프트'의 서울 강남구 본사 앞에서 '업체 갑질횡포 근절, 대리운전업 정상화를 위한 로지연합 규탄대회'를 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프로그램 업체들의 대리운전보험 가입 요구로 복수의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상황을 개선하고, 강제배차·관리비·출근비 부과 중지를 요구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 쏠린 '국제사회의 눈'
3개 국제노동단체 "사용자 대항권 허구" 정부에 비준 촉구

한국 정부를 향한 국제노동단체들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국제노동단체인 국제건설목공노련(BWI)과 국제운수노련(ITF)·국제사무금융서비스노련(UNI)은 최근 주제네바 한국대표부와 한국대사관에 각각 서한을 보내 ILO 핵심협약 비준과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했다.

BWI와 ITF는 특히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사회적 대화 진행 과정에서 '사용자 대항권' 보장을 이유로 노조법 개정안이 검토되고 있는 사실을 우려했다.

앰벳 유손 BWI 사무총장은 "ILO 협약 비준과 관련한 사회적 대화를 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도 "사회적 대화의 목적은 노동기준을 재정의하거나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비준과 동시에 국내법을 어떻게 협약에 걸맞게 고칠지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티븐 코튼 ITF 사무총장도 "사용자 대항권은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목표로 세워진 국제노동법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허위 개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ILO 총회 참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지탄을 피하고 일의 미래에 대한 ILO 총회 토론에 의미 있게 기여하려면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를 향한 약속, 한국노동자에게 제시한 약속을 먼저 이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크리스티 호프만 UNI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플랫폼 노동자·자영업자·프리랜서·비정규직 등 비공식 경제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전 세계는 '노동존중 사회' 선언이 완전히 이행됐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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