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업체 부릉 배달기사들이 라이더유니온(준)과 함께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메쉬코리아 건물 앞에서 일방적 계약해지와 수수료 인하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저는 '부릉'에서 두 달 정도 일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했어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콜'을 잡으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잡은 콜이 자꾸 취소됐습니다. 영문을 몰라 동료에게 물어보니 배달대행지점을 운영하는 지점장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11일 서울 강남구 부릉 본사 앞에서 양지선(28)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양씨처럼 일자리를 잃은 배달기사는 4명이다. 배달대행애플리케이션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가 업무를 위탁하는 지점(파트너사)을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메쉬코리아는 콜을 배차하고 배달기사를 관리할 수 있는 거점지역에 지점을 둔다. 지점은 직영점으로 운영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점은 업무위탁 계약을 맺고 본사 업무를 대행한다. 배달기사는 지점과 위탁계약을 맺는다.

라이더유니온(준)이 이날 오전 부릉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인 라이더들은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하고 배달료 인하에 무방비 상태로 있다"고 주장했다.

배달기사 생계는 나 몰라라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배달기사는 지점과 본사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이다. 배달기사와 계약을 맺은 당사자는 지점이지만, 본사인 메쉬코리아가 일방적으로 지점과 계약관계를 해지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점 운영사에 고용승계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배달기사는 위탁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박정훈 위원장은 "최근 배달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배달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절차적 수단이 없다"며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인 라이더들은 부당해고 구체신청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메쉬코리아가 이미 계약을 맺고 업무를 수행하는 배달기사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점을 변경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메쉬코리아측은 "기존 지점장이 본사 몰래 부당이익을 취해 지점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며 "메쉬코리아는 위탁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배달기사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기 때문에 고용을 책임질 의무는 없지만 그럼에도 기사들의 고민을 듣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곽예람 변호사(법률사무소 함께)는 "배달앱과 같은 플랫폼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지만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제도 개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예견 불가능한 상황에서 계약해지가 이뤄졌을 때 라이더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방적인 수수료 인하에도 속수무책

배달기사는 지점의 일방적 단가인하에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지점에서 일을 시작한 박명성(40)씨는 "이전 지점장이 시스템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져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지점장이 운영하는 지점에서 일하게 됐다"며 "배달일을 계속하려면 근무조건 악화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새로운 지점장 밑에서 일한 뒤 건당 수수료가 기존보다 최소 500원 줄었다"며 "하루 평균 80건 정도 배달을 하는데 한 달로 치면 150만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부릉측이 배달기사 동의 없이 거리당 기준가격을 낮췄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최대송(42)씨는 "기사들은 현재 더 달리고 덜 받는 상황"이라며 "지금까지 기본 거리 0.9킬로미터당 기본배달비 3천200원을 받았지만 기본배달비는 3천원으로 줄고 기본거리는 1.3킬로미터로 늘었다"고 말했다.

박정훈 위원장은 "이들이 만약 노동자였다면 건당 수수료 인하는 명백한 노동조건 후퇴기 때문에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며 "하지만 배달기사는 사장님이라는 신분이 씌워져 있어서 단가인하를 해도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메쉬코리아측은 "배달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려면 기존 판매가(배달건당 비용)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며 "배달기사들의 수수료가 낮아진 것은 판매가가 낮아짐에 따라 발생한 결과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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