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하도록 한 현행법 조항이 사실상 위헌(헌법불합치)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오후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낙태) 1항과 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1항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사실상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결정 정족수는 6명이다. 재판관 4명은 헌법불합치, 3명은 위헌, 2명은 합헌 의견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으로 1953년 제정된 낙태죄 조항을 66년 만에 개정하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규정을 곧바로 폐지해 낙태를 전면 허용할 수 없다며 내년 12월 말까지 낙태죄 조항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여성·시민단체는 환영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입장문을 내고 “이번 결정은 국가가 발전주의를 앞세워 여성의 몸을 인구통제를 위한 출산 도구로 삼았던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며 “여성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던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성 모두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참여연대는 “한국 사회의 양성평등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중대한 진전”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건강권·생명권·자기결정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대체입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변은 “소모적인 찬반 대립을 넘어 모두를 위한 새로운 세상을 논의할 시간”이라며 “임신한 여성이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보장적 법과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도 환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존중한다”며 “국회는 조속히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자유한국당은 “오랜 논쟁과 첨예한 갈등이 상존하는 문제니 만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오랫동안 지연된 정의가 이제야 이뤄졌다”며 “국회는 하루라도 서둘러 관련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평화당은 “낙태죄 폐지는 낙태에 가하는 사법적 단죄를 멈추라는 요구로서 타당하다”며 “새로운 법을 개정하기 위해 최선의 지혜를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녹색당은 “법 개정 과정에서 낙태죄를 변칙적으로 존속시키려 하는 시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지난달 17일 헌법재판소에 낙태 위헌 의견을 전달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낙태의 비범죄화를 환영한다”며 “낙태와 관련한 국회 입법 과정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