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저희는 올해부터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에 들어가는데, 사용자측에서 갑자기 전임자임금을 깎겠다고 나옵니다.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요?” 최근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에서 상담한 사례다. 노동시간단축만큼 줄어든 임금에 준해 전임자임금도 깎아 보겠다는 사용자의 못된 심보다.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 즈음해 부쩍 전임자임금에 관한 상담사례가 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4조에서는 무급전임자와 유급전임자(타임오프 대상)를 두고 있다. 도입될 당시부터 지금까지 노동현장에서의 세력불균형 탓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의 본래적 모습을 적용하기보다는 왜곡 적용돼 왔다. 고용노동부의 이른바 ‘매뉴얼’ 행정이 이 같은 위헌·위법한 현장 적용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긴 시간 협상 끝에 노사가 합의한 편의제공 전체를 부당한 것처럼 몰고 갔다. 지방고용노동청을 중심으로 얼마나 많은 단체협약 시정명령이 있었던가.

당시 법원에서도 위헌적인 행정집행에 상당한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지금에서야 드러나는 사법농단의 전모를 보면 법원의 태도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의심까지 든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달랐다. 노조법 81조4호 중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에 관한 부분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므로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한다고 결정했다(2018. 5. 31. 선고 2012헌바90 결정). 대등한 지위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정한, 실질적으로 노조의 자주성이 저해됐거나 저해될 위험이 현저한 경우에나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결정이다.

위 결정은 좁은 의미의 편의제공에 한정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헌법재판소는 이보다 넓은 전임자임금 지원금지에 관한 처벌규정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었다(2014. 5. 29. 선고 2010헌마606 결정). 하지만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98호 취지를 전임자에 적용하더라도 무리가 없다. 자주성을 침해하는 경우에나 전임자임금을 제한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조활동에서 전임자제도가 갖는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전임자제도 개정이 시급하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실질적 지배’와 같은 기준은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부당노동행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지난해 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이 밝힌 의견에도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다. 공익위원들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및 근로시간면제 제도에 대한 기존 규정을 노사자치와 노조의 자주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별히 공익위원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7호 정신에 비춰 보면 ‘전임자급여 지급은 안 되고, 위반하면 처벌한다’는 노조법 규정도 87호 협약 위반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을 법으로 금지하는 조항은 빼고, 처벌도 원칙적으로 빼자”고 제도개선의 원칙적인 방향을 제안했다.

그럼 앞으로 노조활동의 꽃이라 할 전임자제도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방법과 내용은 뭘까. ‘전임자임금 노사 자율 결정’은 한국노총이 줄기차게 한 주장이다. 그리고 유급전임자 제도는 원래의 입법취지대로 영세·중소 사업장의 노조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편의제공에 관한 노조법 81조4호 개정시한은 올해 말이다. 편의제공과 전임자는 동일한 취지이므로 한꺼번에 개정하면 충분하다는 일각의 주장도 경청할 만하다. 고의를 넘어 ‘지배할 목적’을 구성요건에 추가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굵직한 노동현안에 가려서 그렇지 전임자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현재의 국회가 헌법재판소 결정마저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다. 이미 제안된 법률안 중에는 앞서 살핀 원칙이 아닌 예외를 원칙인 양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내용을 정한 단체협약을 무효로 하고 초과해 급여를 지급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겠다"는 주장도 있다. 곧 비준될(되길 희망하는) ILO 기본협약의 정신과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의 의견을 다시 한 번 제대로 살펴보길 권한다.

입법은 더디다. 위헌·위법인 상태는 하루라도 빨리 제거하는 것이 대통령과 노동부 장관의 책무이기도 하다. 입법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행정입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수준의 제도는 곧장 개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부 장관은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를 열고 헌법과 법률의 취지를 좇아 한도를 재고시해야 한다. 그 방향은 조합원수 ‘등’을 고려해 전임자수와 활동에 제한을 두지 않는, 그야말로 노동기본권이 충분히 보장하는 내용이 돼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