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해 6월 지방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시의회 110명 시의원 중 여권이 가져간 의석은 102석. 자유한국당이 6명, 바른미래당·정의당이 각각 1명의 시의원을 배출했다.

유일한 진보정당 시의원. 권수정(46·사진) 정의당 시의원은 이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8 세계여성의 날 열린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그가 발의한 '서울특별시 조례 일괄정비를 위한 조례안'과 '서울특별시 교육·학예에 관한 조례 일괄정비 조례안'이 의결됐다. 이로써 서울시 53개 조례와 서울시교육청 4개 조례에서 '근로'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노동'이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서울시·서울시교육청은 근로계약서 대신 노동계약서, 공공근로요원 대신 공공노동요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권수정 시의원은 "내가 서울시장이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여권이 운영하는 서울시정보다 진일보한 서울시·사회로 발전시킬 대안을 찾기 위해서다. 한 명의 시의원에게 부여된 임무치고는 무거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 가까이 천식에 걸려 앓아누웠다. 권 시의원은 "욕심은 많은데,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외롭다거나 압박감을 많이 느낀다는 속내도 털어놨다. 우군은 적고 헤쳐 나가야 할 현안은 많기 때문이리라.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권 시의원을 만났다.

근로계약서? 아니 '노동계약서'

- 서울시 53개 조례와 서울시교육청 4개 조례에 명시된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는 조례 개정을 성사시켰다.
"서울시의원은 서울시청과 서울시교육청을 담당하며 양쪽의 조례를 같이 바꾸는 일을 한다. 저는 시의회에서 노동계급을 대변하고자 한다. 그 정체성을 가지고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을 했고 선택받아서 시의원 자리에 왔다. 서울시가 노동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공식표기에 '노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현실이 답답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노동자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가 있다. '거지' '더럽다' 이런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노동은 이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고 원동력이고, 역사를 이끌어 온 축이다. 이렇게 대우받을 단어가 아니다. 이름을 정확히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 시의원 110명 중 유일한 진보정당 소속이다. 조례 통과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초선의원이 80여명이다. 이들을 설득했다. 의미를 설명하기보다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가 남은 '근로'라는 단어를 바꾸자는 의견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서울시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 국회나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못하는 일을 서울시의회가 해 보자고 여긴 듯하다. 크게 반발하는 의원은 없었는데 오히려 서울시 공무원들이 상위법과 충돌한다며 반대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런 시도를 했지만 내부 반발로 이루지 못했다고 들었다."

-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이후 시의회 활동을 한 지 10개월이 됐다. 소회가 있다면.
"다양한 부문·단체와 연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노조나 교통네트워크단체, 환경단체 등과 두루 만나고 있다. 지금 상황은 민주노동당 시절과는 다르다. 당시 대부분 단체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원했다면 지금은 민주개혁진영이라고 일컬을 만한 곳 상당 부분을 박원순 시장이 흡수했다. 외곽지원 역량이 더불어민주당에 포진하고 있다. 진보정당과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정책을 고민할 단체가 예전보다 줄었다. 노동부문 소통도 아쉬운 점이 많다. 정의당에 대한 민주노총 중앙의 입장이 단일하지 못하기 때문에 협업하기 어려운 상황이 곧잘 발생한다. 제가 민주노총 출신이지 않나. 많이 속상하다."

"조직사업 한다는 각오로 활동한다"

- 시의회 생활은 어떤가.
"얼마 전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마주했다. 노조에서 소수로서 겪었던 일, 외로울 때에 관해서 말하더라. 많이 공감했다. 시의원 활동과 관련해 상의할 누군가가 없다. 회의장 안에 들어가면 모든 결정과 발언을 혼자 해내야 한다. 혼자 있다는 소외감, 배제되는 느낌, 여러 복잡한 감정이 불쑥불쑥 생긴다. 나름대로 현장에서 단련했고, 거대한 기업의 갑질과 싸워도 봤고, 강경한 노동자로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시의회 생활은 어렵다고 느낀 적이 많다. 그래서 여기에서 그냥 조직사업을 한다는 생각을 한다.(웃음) 이번 조례 통과로 조직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 아쉬운 점은 없나.
"박원순 시장이 건드려 놓은 일은 대단히 많다. 좋은 의제를 조명하려 하고, 시도하거나 정착시킨 사업도 꽤 된다. 그런데 내용을 조금 파고들어 가면 허술한 점이 많다. 사람을 남기는 시정이 아니라 시스템 구축에만 착안하는 모습을 자주 확인했다. 2년 연속 서울시정 만족도 1위 사업이 무인자전거 대여사업인 '따릉이'다. 그런데 따릉이를 유지·보수·관리하는 현장노동자는 생활임금은커녕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 이 문제를 지적했더니 박 시장은 사정을 몰랐다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현장을 발견하고 개선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하다. 서울시 산하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모습을 일일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부족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지난해 10월 천식에 걸려 두 달 넘게 링거를 맞고 살았다. 천식호흡기를 들고 다녔다. 부담감, 업무를 잘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건강이 나빠졌다. 욕심만 앞서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있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노동현장을 점검해 왔다. 서울시가 발표한 정규직화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생활임금·최저임금 위반은 없는지, 청소노동자 휴게실 설치 같은 노동환경 개선작업을 했는데 실태는 어떤지 살펴봤다. 이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정규직화를 민간위탁 영역까지 확장한다던 정규직화가 어떻게 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다. 서울시도 중앙정부 지침을 따른다고 했다. 정규직화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의당 안을 제시하고 정규직화를 끌어내야 한다. 법으로 규정이 안 되는 노동이 확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공유경제라는 포장 속에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고 있다. 1인 사업장에서 사장님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노동자와 다름없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서울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는 한 해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노동자 곁에 있었던 노회찬 의원 닮고 싶다"

- 4·3 보궐선거가 얼마 전 끝났다.
"정의당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노회찬 의원을 묻지 않고 옆에다 두고 치르는 선거였다. 많은 평가지점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는 민심이 드러났다. 자유한국당으로 회귀까지는 아니지만 대안이 없는 상황에 시민들이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들의 기대를 정의당이 끌어안았다고 보기 힘들다. 과제가 주어졌다. 부산·울산·경남의 노동벨트, 진보정치를 일궜던 곳에서 갈등도 확인했다. 민중당·노동당 등 소중한 진보세력이 함께하지 못하고 갈등의 폭이 되레 넓어지기도 했다."

- 시의원 권수정, 노조 활동가 권수정, 인간 권수정이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아시아나항공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대의원을 했다.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을 하며 전국에서 조합원을 만나고, 아시아나항공지부장과 민주노총 여성위원장을 하면서 시기별로 주어진 역할을 했다. 그 모든 것이 일하는 사람, 노동자 권수정이다. 역할이 달라져 시의회에 있다. 그래도 제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장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노회찬 의원에 대해 다양한 평가는 있을 수 있다. 국회로 그를 실은 운구차량이 올 때 청소노동자들이 도열해서 인사했다. 노동자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닮고 싶다. 정치일선에 나온 사람으로서 희망이기도 하고 각오이기도 하다. 노 의원의 6411번 버스 연설, 강남 빌딩숲으로 매일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 이야기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존재하지만 숨겨져 있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을 닮은 노동자 권수정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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