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중학교 시절 수학문제를 푸는 것엔 관심이 없었던 나는 친구들과 주로 PC방에서 일상의 행복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 PC방이 가끔씩 지루해질 때면 집에서 뒹굴뒹굴하다 눈에 보이는 책을 붙잡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그렇게 읽었던 책들 중 지금까지도 마음에 강렬히 새겨진 작품이 있다. 첫째는 <체 게바라 평전>이며, 두 번째는 <빈센트 반 고흐 자서전>, 그리고 <전태일 평전>이다. 돌이켜 보면 그 어떤 감동도 느낄 수 없었던 10대 시절,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누군가를 모델로 삼고 싶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49년 전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손에 쥐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세상을 떠난 전태일을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마음 한구석에 새겨 놓고 있다.

노동존중 서울시를 위해 전태일 열사의 꿈이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공간으로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 새롭게 개관했다. 건물 2층엔 소극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과 함께 전태일의 삶이 담긴 음악극 <태일>을 지난주에 관람했다. 최근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며 어려운 순간들을 쉴 새 없이 마주하며 눈물 콧물을 쏟아 냈었는데, 공연을 보는 내내 또 감정이 북받칠까 봐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론 지금 세상에 없는 그가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와 위로를 해 줬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존재했다.

전태일 열사를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단어는 ‘풀빵’이 아닐까 싶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어린 여공들에게 끼니를 챙겨 주기 위해 몇 푼 되지도 않는 월급을 털어 풀빵을 건네고, 정작 본인은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퇴근길엔 교통비가 없어 동대문에서 도봉산 밑자락 집까지 밤새 걸어갔던 그였다. 참 웃긴 얘기지만 배고픈 걸 절대 참지 못하고, 습관처럼 택시를 타고 다니는 내게 경이로우면서도, 가장 아름답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다. 이러한 태일의 모습 또한 음악극에 생생히 담겨 있고, 공연을 관람하던 도중 눈이 가장 시뻘개진 순간이었다.

공연 중간중간 울려 퍼지는 배우들의 노래에서 가슴을 찌르는 가사의 단어는 ‘가난’이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인격조차 무시당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군말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매일같이 고된 날들을 버텨 낼 수밖에 없는 현실, 가난한 노동에는 근로기준법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전태일의 절망 또한 마주했다. '가난은 왜 죄여야만 하는가'라는 그 시절 스물두 살 전태일의 되물음에 우리 사회는 얼마만큼 응답하고 있을까. 그리고 노동은 제대로 존중받고 있는가.

얼마 전 10억원을 대출받아 재개발 지역의 건물을 사서 전셋집을 탈출하고, 안정된 노후를 꾸리고 싶었다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주변의 잇따른 비판 속에 결국 사퇴를 택했다. 또한 현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으며 낙마하고 있다. 사회적 계급을 드높이고, 일생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수단으로서 부동산을 통해 자산을 증식하는 선택지는 보편적 기준이 돼 버렸다. 이러한 현실은 노동의 권리를 더욱 배척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회구조를 더욱 공고히 만든다. 더군다나 집안으로부터 막대한 자산을 물려받거나, 소수의 평생직장을 얻을 기회조차 없는 현 청년들에게 그들만의 보편적 기준은 이토록 허망하다.

그 시절 22살 태일이 살았던 세상과 비교한다면 많은 것들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터와 삶에서 끊임없이 차별받고 아파하는 지금 청년들의 현실이 태일이 마주했던 절망의 장벽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만 한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신음하던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반응하고, 세상의 평등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놓지 않고자 했던 전태일의 꿈을 잊지 않아야 할 이유다.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 일찍 꿈을 꿨던 전태일에게 이렇게나마 위로를 보내 본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heol37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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