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 보호단체이고 토론주제인 핵심협약은 노동자 편이다.” 황당하다. 그럼에도 너무나 당당한 목소리에 한 번 더 놀란다. 지난 2일 저녁 KBS 1라디오 열린토론에 참석한 어느 토론자의 말이다. ILO를 ‘노동자 단체’라고 하다니. 그리고 누구도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 나만의 극단적인 생각일까. 이 상황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라면 그야말로 우리 사회는 비극이다.

ILO 홈페이지를 열어 보자. ILO는 ‘About the ILO’에서 “The only tripartite U.N. agency, since 1919 the ILO brings together governments, employers and workers of 187 member States, to set labour standards, develop policies and devise programmes promoting decent work for all women and men”이라고 소개한다. 1919년부터 187개 정부·사용자·노동자 회원들이 참여해 노동기준을 정한다고 안내한다. 사회정의(social justice)의 이념 아래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는 일(decent work for all women and men)’을 구체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은 이어졌다. “세금으로 지원하는 공무원과 교사가 노동조합이 웬 말인가”부터 “경제가 어려운데, 경영권도 보호해야 한다”는 식상한 레퍼토리까지. “유럽에는 대체근로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일반적이지 않은 주장도 나왔다.

결사의 자유 및 강제노동 금지 관련 ILO 4개 핵심협약 비준 근거는 긴말이 필요 없다. 내용상으로나 절차상 대통령이 비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헌법 6조1항)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에 관한 협약(87호) 155개국,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98호) 166개국,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호) 178개국, 강제노동 철폐 협약(105호) 175개국에서 각각 비준했기 때문이다. 인간노동에 대한 권리장전이다.

그래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나온 핵심협약에 관한 요구에 응해야 한다. "노동과 환경의 일반적인 조건을 만족하는 상품만 거래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것 아닌가. "단결권을 보장받지 못한, 강제적인 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은 구매하지 말자"는 합의였다. 같은 이유로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하면서 생산하는 상품은 거래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가끔 보게 되는 15세 미만 소년의 그것도 극한의 장시간 비인간적인 노동을 허용하는 나라와 우리나라가 무역을 한다면? 아마 그 누구든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 노동현장도 위 협약을 비준할 만한 문명국에 이르고도 남을 ‘형편’이다. 노동 현실은 앞서감에도 기초인 제도가 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부조화 해소를 위한 1차적 책임은 국회와 정부에 있다.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서 부족하지만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대신하고 있다. 해고자들은 물론이고 사용자와 종속관계가 얕은 노동자들의 단결권·단체교섭권을 인정한 판례나 단체행동권의 과도한 제한과 부당노동행위 남용을 제한한 헌법재판소 결정들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우리는 ‘근로자만이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법률 형식상 문언을 넘어 핵심협약 내용을 전제로 한 판단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비준은 판례법을 확인하는 행위일 뿐이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제도의 규범력 확보 차원에서라도 신속한 비준이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 비준과 국회 동의에 관한 토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헌법과 법률의 해석이 명확하게 정리된 후에 나머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듣는 것이 부족해선지 몰라도,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가 마치 ‘국회 동의를 얻어야만 대통령이 비준할 수 있다’는 전제로 하는 듯하다. 더 나아가 경사노위에서의 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일부 한정된 입법 개정사항을 넘어 노동법 전반을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토론자 모두가 동의하듯 ‘합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핵심협약에 대한 대통령의 비준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 헌법(60조1항)에서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한해 국회에 ‘동의권’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핵심협약이 이러한 사유에 해당하는가. ILO 회원국 대부분이 핵심협약을 승인한 만큼 국제법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핵심협약이 비준되면 파업 등으로 사업장 혼란이 더해질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은 이제는 걷어 내자. 대기업의 정당한 파업을 극단적으로 왜곡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할 문제도 아니다. 핵심협약 비준은 우리 사회 미조직 90% 노동자들, 특히 폭증하는 사용자 없는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확인하고 찾아주는 과정일 뿐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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