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최저임금위원회가 발족 32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1월 최저임금 결정체계 이원화 방침을 밝힌 뒤부터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가 식물 상태에 놓였다. 당장 내년 최저임금 심의에 빨간불이 켜졌다.

3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최저임금연대는 "매년 4월 초 열리는 최저임금위 1차 전원회의가 올해는 언제 열릴 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며 "정부가 위촉한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악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10년간 최저임금 협상 상견례 성격을 갖는 1차 전원회의가 4월 초에 열리지 못한 때는 최저임금위원 위촉이 늦어졌던 지난해가 유일하다.

최저임금법 개정 '안갯속'

최저임금 결정체계 이원화를 비롯해 76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5일 열리는 3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다뤄질지는 미지수다. 3일 고용노동소위(법안심사소위)가 열리기는 하지만 여야 모두 최저임금법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환노위 여당 관계자는 "노동부가 내년 최저임금 심의를 이미 요청했고 3월 국회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촉박하게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것은 무리"라고 잘라 말했다. 야당은 최저임금법 개정을 시급한 사안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진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편하든 현행 제도를 유지하든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릴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여야 모두 최저임금법 개정이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는 인식이 있다"고 귀띔했다.

3월 국회에 이어 4월 국회가 곧바로 열린다 해도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를 점치기 어렵다. 설령 국회를 통과해 최저임금법이 정부 생각대로 개정되더라도 당장 내년 최저임금 심의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구간설정위원회·결정위원회 구성부터 첨예한 갈등이 불가피한 탓이다. 3개월의 최저임금 심의기간도 장담하기 힘들다.

공익위원 집단 사표, 배경에는 노동부?

직격탄을 맞은 곳은 최저임금위다. 최저임금위는 올해 6월26일까지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안을 의결해 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지난달 29일 이재갑 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심의요청을 한 지 90일째 되는 날로, 최저임금법에서 정한 최저임금 심의기간이다.

하지만 류장수 최저임금위원장을 비롯한 8명의 공익위원들은 집단 사표를 낸 상태다. 최저임금 협상 과정에서 노동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이 집단 사퇴로 의사를 표명한 적은 있었지만 정부가 위촉한 공익위원들이 집단 사표를 낸 것은 최저임금위 발족 3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내년 최저임금 심의는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이재갑 장관은 이날 <뉴시스> 인터뷰에서 "(공익위원) 사표를 받아 놓기만 했는데, 국회 입법 상황과 본인들의 의사를 확인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며 "현행 법령상 후임자가 위촉될 때까지는 위원직을 유지하고 계속해서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내년 최저임금 심의는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위 한 공익위원은 <매일노동뉴스> 전화통화에서 "사표를 낸 이후 노동부에서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고 전원회의가 당장 열릴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며 "공익위원들이 복귀한다 한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공익위원 집단 사표 제출에 노동부 의중이 반영됐다는 말도 했다. 해당 공익위원은 "1월 초 개편안에 대해 질의응답을 할 때 최저임금위원들을 100% 교체하겠다는 시그널을 강하게 줬다"며 "이제 와서 노동부가 공익위원들에게 복귀를 요청하기는 (모양새가) 그렇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최저임금연대는 "정부가 공익위원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최저임금법 개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익위원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참담하다"며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염원을 모아 사퇴의사를 철회하고 최저임금위로 복귀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미영·김학태·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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