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노동자가 업무상 사유로 위험에 노출됐고 그 영향이 태아에도 미쳤다면 태아도 산업재해보상보호법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제안이 담긴 보고서가 공개됐다.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가임기 여성노동자가 10만명을 넘는다는 내용이다.

28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자녀 건강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 보고서를 공개했다. 우송대학교 산학협력단이 고용노동부의 연구용역을 의뢰받아 지난해 12월 보고서를 완성했다.

“소송 제기해도 피해 가중될 위험성 농후”

임신 중 태아의 건강손상과 관련한 산재보험 적용방안 논의는 10년 전 제주의료원에서 임신한 간호사들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거나 유산하면서 촉발했다. 2009년과 2010년 제주의료원 임신 간호사 5명이 유산했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 이 가운데 유산을 겪은 간호사는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심장질환 아기를 출산한 간호사는 인정받지 못했다. “근로자가 아닌 태아에게 발생한 문제는 산재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산재보험법은 유산이나 유산증후는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만 태아의 건강손상은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산재보험법에서는 업무상재해를 “업무상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고, 현재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돼 있다.

임신노동자의 업무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배상받기 위해서는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자녀의 선천성 질환 발생의 원인이 선천성 질환임을 입증해야 하지만 노동자가 입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돼 자녀와 가족의 피해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임신한 노동자 업무에 기인해 태아가 건강손상을 가지고 출생했다면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산업구조 변화로 작업공정이 복잡해지고 새로운 화학물질이 크게 늘어나 불임·유산·기형을 유발하는 생식독성 인자가 늘어났음에도 산재보험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동안 협소하게 해석돼 온 산재보험법 적용을 개선해 자녀 건강 손상에 대한 신속한 보상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생식독성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가임기 여성을 246만4천16명, 이런 물질을 취급하는 여성노동자를 10만6천669명으로 추산했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를 근거로 산출했다. 생식독성 위험성이 큰 생식독성·생식세포 변이원성 물질을 취급하는 40세 이하 여성노동자도 3천929명이나 된다.

이용득 의원, 산재보험법 개정안 발의

이용득 의원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임신한 노동자가 업무상 사유로 태아의 건강이 나빠졌을 경우 태아도 산재보험 보상 범위에 포함하도록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이날 발의했다. 일명 태아 산재보험 적용법이다.

개정안에는 현행 산재보험법 적용대상을 ‘근로자’에서 ‘임신 중인 근로자가 업무상재해 또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돼 출산한 자녀’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자녀에게는 요양급여·장해급여·간병급여·직업재활급여를 지급하고, 그 부모가 자녀의 간병을 위해 휴직한 경우에는 최대 2년간 휴업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보험급여는 최저보상기준 금액으로 지급하고, 동일한 사유로 다른 법령에서 지원을 받으면 그 금액 한도 내에서는 보험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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