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노동계는 "시민사회와 노동자의 연대로 재벌개혁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사례"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빌딩 5층 강당에서 57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을 표결에 부쳤다. 연임안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대한항공은 정관에 사내이사 선임시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가 연임안 부결에 영향을 미쳤다.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가진 대한항공 우호지분은 33%가량이다. 국민연금은 11.56%, 외국인이 20.50%, 기타 주주가 34.59%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외국인·소액주주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조 회장 연임에 반대한 셈이다.

재벌 총수가 주주총회를 통해 경영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향력을 확인한 국민연금은 향후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기업의 부당지원행위·경영진 일가 사익편취·횡령·배임과 같이 주식가치를 훼손할 영향이 있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방침을 정한 상태다.

노동계는 조 회장 연임 불발에 환영 입장을 냈다.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에서 "대한항공 주주총회 결과는 국민에게 지탄받는 재벌총수의 말로가 어떤지 보여 줬다"며 "황재경영을 이어 가고 있는 재벌들은 대한항공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조양호 회장의 연임안건 부결은 기업이 전근대적 권력을 휘두르는 총수 일가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며 “앞으로 기업 경영진은 불법·편법적 경영을 지양하고 회사가치 극대화와 주주·노동자·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건전한 경영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대한항공측은 "(조 회장이) 사내 이사직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경영권 박탈은 아니다"는 입장을 냈다. 대한항공 최대주주이자,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을 통해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