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 여영국 정의당 후보(왼쪽)와 손석형 민중당 후보가 지난 26일 오후 경남 창원 성산구 상남동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에서 열린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의원대회 자리에서 인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선거 분위기 대단하지예. 성산구는 창원공단을 끼고 있는 근로자 중심 지역 아입니꺼. 아무래도 노동자·서민을 대변하는 후보가 우세하지예. 손석형 후보는 한국중공업노조 위원장을 오래했고, 여영국 후보는 예전에 홍준표 경남도지사한테 바른 소리 하며 맞장 뜬 인물 아인교. 그때 자존심 많이 상했을 거라. 근데도 계속 덤비데. 더불어민주당이랑 정의당이 후보단일화를 했지 않습니까. 아마 여영국 후보와 강기윤 후보가 박빙일 거라요. 박빙.”

4·3 재보궐선거 최대 격전지인 경남 창원성산. 지난 26일 KTX를 타고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창원중앙역은 전국 최대 산업단지가 조성된 곳답게 업무차 방문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은 여영국 정의당 후보와 손석형 민중당 후보가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의원대회에 참석하기로 한 날이다. 대의원대회 시작까지 시간이 좀 남아 일단 굶주린 배를 채웠다. 선거 분위기를 살필 겸 택시를 타고 성산구 최대 번화가 앞에 위치한 은아아파트로 향했다.

“창원공단 위치한 성산, 노동자·서민 후보 선호”
정의당·더불어민주당, 단일화 후 지지율 역전


창원 성산구는 지역민이 자찬할 정도로 경남지역 최대 상업·산업단지가 구축된 곳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모여 있다. 꽃샘추위가 물러간 이날 창원 낮기온은 섭씨 21도까지 올랐다. 성산구로 가는 길목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바람에 눈꽃을 뿌리며 봄을 알리고 있었다.

“성산구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벚꽃은 언제 폈어요?”

온갖 질문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답하던 택시기사 김형기씨의 목소리가 재보궐선거 대목에서 돌변했다. 김씨는 상기된 목소리로 열변을 토했다. 성산의 특징과 성향, 후보들 정보에 이르기까지 막힘이 없었다.

“과거 한나라당이 성산에서 당선된 적이 있어요. 노동자후보로는 권영길이 두 번, 노회찬이 한 번 됐지예. 성산구는 공단이 있어 노동자·서민을 대변하는 사람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서가 강해요. 더불어민주당하고 정의당이 단일화했지 않습니꺼? 도의원만 두 번 한 여영국 후보가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거는 처음이라 밀어줘야 한다는 정서가 있어요. 홍준표랑 맞장 뜨면서 유명해지기도 했고.”

이제 막 선거 얘기로 신이 나던 찰나 택시가 은아아파트 앞에 섰다. 창원 분위기를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던 기자가 카드를 찾아 허둥대는 사이 김씨는 못다 한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 냈다. 택시문을 닫기 직전 소리치듯 외쳤다. “박빙일 거라요. 박빙.”

강기윤 자유한국당 후보와 여영국 정의당 후보가 박빙일 것이란 얘기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에서 강기윤 후보에 뒤처져 있던 여영국 후보는 권민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한 직후 지지율이 폭등했다. 조원씨앤아이가 쿠키뉴스 의뢰로 25~26일 양일간 창원 성산구 거주자 19세 이상 성인남녀 52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여영국 후보가 49.9%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1위로 올라섰다. 선두 자리를 유지했던 강기윤 후보는 25.8%로 2위가 됐다. 이재환 바른미래당 후보 7.1%, 손석형 민중당 후보 5.1%, 진순정 대한애국당 후보 2.4%, 김종서 무소속 후보 1.9% 순으로 나타났다.

여영국 후보는 웅남·중앙·반송동(42.3%), 사파·상남동(51.7%), 가음정·성주동(56.4%) 등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모든 지역에서 강기윤 후보를 앞섰다. 창원성산 정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 29.9%, 정의당 26.5%, 자유한국당 26.0%, 바른미래당 5.2%, 민중당 2.7%, 대한애국당 2.2%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65.7%가 여영국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해 후보단일화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 여영국 정의당 후보가 26일 저녁 창원 성산구 상남사거리에서 지나는 시민들에게 인사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았다. <정기훈 기자>

“경기불황 문재인 정부 탓? 결국 표는 지지후보에”

경남지역 최대 상업지구가 위치한 성산구에 도착하자 후보 6명의 대형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렸다. 건널목과 교차로마다 후보를 선전하는 현수막에, 각 당 선거운동원이 손팻말을 들고 후보들의 이름을 연신 외쳐 댔다.

“기호 2번 강기윤.” “기호 5번 여영국.” “기호 6번 손석형.”

창원은 한국지엠·두산중공업·현대로템·현대위아 등 대기업 제조공장이 자리 잡은 도시다. 대규모 공단이 있는 지역답게 한때 호황을 누렸다. 그러던 중 세계 4위 조선소에 이름을 올린 STX조선해양이 2015년 유동성 위기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조선업에서 시작된 위기는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경기침체에 대한 지역주민의 불안과 불만이 커지는 이유다.

20년 넘게 성산구 지귀전통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는 양금자(가명)씨는 “나는 기호 2번 찍을 거야. 2번”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2번을 지지하는 이유”를 묻자 “문재인이 대통령 되고 나서 창원 경기가 하루아침에 주저앉았다. 다른 후보가 되면 창원 경기는 계속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강기윤 후보가 돼야 창원 경제가 살아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끌려나온 것도 북한에 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쪽에서 꼬막을 소쿠리에 담던 김영오(가명)씨는 “창원 경기가 예전에 비해 많이 어려워졌다”며 “창원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온다는데 재래시장 상인들은 다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손석형 민중당 후보가 26일 오후 창원 성산구 지귀시장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권수혁씨는 “창원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선거가 치러지는 성산구는 현대위아 같은 대공장이 있고, 경남 최대 상업지역이라서 그나마 경기가 좋은 편”이라며 “아무리 경기가 나쁘다고 해도 표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결국 평소에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인물에 투표하게 돼 있다”며 “창원이 아무리 보수적인 도시라고 해도 시대가 변하고 있고 여러 차례 진보진영 의원들을 배출한 만큼 자유한국당 경제프레임이 유권자들에게 먹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윤 후보는 ‘경제는 강기윤’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경기회복을 주요 공약으로 밀고 있다.

여영국 “노회찬의 꿈, 약속 이어 가겠다”
손석형 “진보정치 20년 한길 걸어왔다”


여영국 후보와 손석형 후보는 이날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의원대회가 열린 성산구 상남동 노동복지관을 찾아 지지를 당부했다. 두 후보는 대의원들과 일일이 인사하며 “잘 부탁드린다” “마지막까지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의원들은 사회자 소개에 따라 후보들이 일어나 인사하자 “파이팅”을 외치며 환호했다.

두 후보는 진보후보(손석형 후보)와 단일후보(여영국 후보)를 강조하며 지지를 요청했다. 손석형 후보는 대의원대회 직후 방문한 지귀전통시장 유세에서 “진보정치 20년 한길을 걸어왔다”며 진보후보에 초점을 맞췄다. 손 후보는 상인들과 시장을 찾은 시민들을 향해 “20년 전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와 손잡고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며 “서민이 잘살 수 있게, 재래시장을 활력 돋게 하겠다”고 말했다.

성산구 상남사거리에서 퇴근유세에 나선 여영국 후보는 “정의당·더불어민주당 단일후보”를 강조하며 “노회찬의 꿈, 노회찬의 약속을 이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 또는 “믿는다”고 화답하며 지지를 보냈다.
 

▲ 정기훈 기자

노동계 “마지막까지 진보진영 후보단일화 추진”

경남본부 대의원대회에서 만난 민주노총 간부와 대의원들은 진보진영 후보단일화가 무산된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일부 대의원은 여영국 후보와 권민호 후보 간 단일화와 관련해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집권여당과 정의당이 어떻게 후보단일화를 할 수 있느냐”며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대의원은 “후보단일화에 대한 관점이 정당과 후보마다 다를 수 있다”며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창원성산은 17대 총선에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진보진영 최초로 국회의원에 당선한 곳이다. 옛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이 단일화에 실패한 19대 총선을 제외하고 모두 진보진영 후보가 당선했다. 창원성산이 진보정치 1번지로 떠오른 배경이다.

현장에서는 진보진영 후보단일화 실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여영국 후보가 진보후보 단일화 없이 보궐선거에서 당선할 경우 진보진영에 불어닥칠 내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경남지역 노동계 관계자는 “진보진영 후보단일화가 무산된 이후 조합원들 사이에 감정이 격화하고 있다”며 “현장 조합원들이 19대 총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지막까지 지지후보를 두고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후보자가 마지막까지 후보단일화를 위해 나서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경남본부 대의원대회에 함께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여영국 후보와 손석형 후보를 향해 후보단일화를 호소했다. 김 위원장은 “경남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지역을 바꾸고 진보정치를 일궈 온 곳”이라며 “진보정치의 단결과 투쟁의 전통이 있는 곳이다. 마지막까지 진보정당 단결의 기운을 모아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