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충북사무소)

사업장에 출근해 업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까지 적정한 휴게시간이 보장되는지 여부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건강과 관련한 중요한 노동조건이다. 반면에 사용자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휴게시간은 임금이 지급돼야 할 노동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장에 매여 있음에도 금전보상을 받지 못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서에 휴게시간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9 to 6’로 일하는 많은 사업장에서 점심시간 1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사용하다 보니, 대체로 하루 업무시간 중 휴게시간을 구별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업무 특성에 따라 노동시간과 휴게시간 구별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하고, 때로 휴게시간은 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의도적으로 그 구별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까지 존재한다.

최근 필자가 상담했던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A어린이집에서 근무했던 보육교사는 재직기간 동안 총 4차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특이하게 근로계약서마다 휴게시간 배치와 길이가 달랐다. 2015년 근로계약서에는 오전 8시30분에서 9시까지 30분, 점심시간 12시30분에서 1시까지 30분, 오후 5시30분에서 6시까지 30분이 휴게시간으로 명시돼 있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출근시간대 휴게시간이 사라지고, 점심시간·아동수면시간 그리고 오후 시간대에 각 20분씩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2018년 근로계약서에는 다시 오전 8시30분에서 9시까지 30분, 오후 4시30분에서 5시까지 30분 등 두 번의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지럽게 바뀐 근로계약서만 봐도 보육교사에게 휴게시간이 제대로 보장돼 왔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보육교사 출근시간이 오전 9시라고 하면서도 출근시간 이전에 휴게시간이 배치돼 있었고, 실제로는 어린이집에서 정한 시간표에 따라 보육교사가 통원버스에 탑승하거나 등원하는 아동을 맞이하기 위해 미리 출근한 것에 비춰 보면 보육교사가 실제로 휴게시간을 사용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매년 근로계약서상으로는 휴게시간이 변동됐지만 실제 보육교사의 하루 업무일과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점심시간이나 아동수면시간은 보육교사 휴게시간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보육활동이 요구될 뿐이어서 근로계약서상 휴게시간에 보유교사가 휴식을 취했다고 볼 여지가 전혀 없었다. 어린이집의 모든 보육교사 휴게시간이 동일할 뿐만 아니라 휴게시간에 아동을 돌볼 대체 보육교사도 정해져 있지 않은 점, 보육아동과 떨어져 일일보육일지나 주간계획안 등 수많은 행정서류를 안정적으로 작성할 시간이나 회의시간 등이 확보돼 있지 않은 점, 별도 휴게공간조차 따로 보장돼 있지 않은 점 등 보육교사 근무실태를 조금만 살펴봐도 근로계약서에 정한 휴게시간은 단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허구의 시간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근로계약서상 휴게시간이 실제로 지켜질 수 없다는 사실은 어린이집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린이집은 근로계약서에 “각 반별 간식시간, 점심시간, 특별활동시간, 정규과정 활동 후 통합보육시간 등을 최대한 활용해 휴게시간으로 활용한다”는 문구를 친절히 새겨 넣었다. 보육교사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근로계약서상 휴게시간이 실제로는 ‘가짜 휴게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위와 같은 사례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대다수 보육교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전국 수많은 보육교사들이 ‘가짜 휴게시간’ 형태로 ‘공짜 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휴게시간 보장을 위해 보조교사 추가채용, 노동시간 중 휴게시간 부여 명시, 특별활동 및 낮잠시간 활용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앞서 살펴본 어린이집 근로계약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보건복지부 대책을 충실히 따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보건복지부 대책이 보육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운용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가짜 휴게시간’ 형태로 일하는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관련 행정기관과 노동부의 꾸준한 관리·감독을 통해 보육교사에게 정당한 임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도 보육교사들이 휴게시간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규 보육교사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대체근무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집 보육아동에게 제공되는 보육서비스의 질은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육교사에게 제공되는 노동환경의 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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