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국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차례로 적용된 ‘1주일은 7일’이라는 이 당연한 규정의 시행은 ‘주 52시간제’라고 불리며 마치 대단한 근로시간단축 제도가 도입되기라도 한 듯 보도됐다.

근로기준법상 법정 근로시간은 여전히 1주간 40시간이고, 예외적으로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1주간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여기서 “당사자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의사가 합치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자의 연장근로 요구에 대한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가볍게 해석된다. 사용자가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 규정에 따라 집단으로 연장근로를 실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노동자의 명시적인 거부가 없다면 ‘묵시적 동의’로 간주해 당사자 간 합의가 성립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용자 관점에서 주 52시간 근무를 시키는 데 있어 노동자들의 동의는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 사용자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고 실제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는 노동자는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제’가 아닌 ‘주 52시간제’로 여겨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근로기준법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근로자대표’도 이와 비슷하다.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통해 연차휴가를 특정일로 대체하게 할 수 있고, 퇴직연금제도 및 각종 근로시간 제도를 도입하고 운용할 수 있다. 이렇게 근로자대표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만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대표의 자격이나 선출 방법, 권한의 제한 또는 기한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지 않다.

덕분에 실제 현장에서는 사용자 입맛에 맞는 근로자대표가 간단한 회람을 통해 선출되고 제한 없는 권한을 휘두른다. 그 결과 자신의 사업장에 근로자대표가 누구인지 모르는 노동자가 대부분이고, 근로자대표 존재는 관련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용노동청에 신고했을 때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인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탄력근로제 개선 합의안’에서도 ‘근로자대표’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우선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통해 시행 단위가 최대 6개월로 늘어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수 있다. 도입 후 운용 과정에서도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만 있으면 미리 정해 둔 근로시간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도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인 실질적 임금감소와 건강권 침해 문제의 대안이라며 내놓은 방안에도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가 있으면 기준과 달리 운용할 수 있도록 해 뒀다.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 ‘합리적인 임금보전 방법’을 서면합의를 통해 마련할 수 있고, 근로일 간 연속휴식시간을 의무적으로 11시간 이상 두도록 한 최소한의 규정도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대표와 합의를 통해 11시간 미만으로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인 임금보전 방법’과 ‘불가피한 경우’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당연히 없다. 정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그럴듯한 컨설팅을 통해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꾸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쯤 되면 경사노위 합의안에 등장하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가 노동자들의 안전장치인지, 사용자들을 위한 안전장치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실제 입법목적과 같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라면, 그 안전장치가 실제로 잘 적용될 수 있도록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해석해야 한다. 설치만 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안전장치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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