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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할 권리
▲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대화를 할 수 있는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수많은 폭력과 차별은 여성 당사자에게 문제해결을 요구하기 위한 대화의 권리가 사회적으로 박탈된 문제이기도 하다.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지만 가부장제하에서 자신이 가진 권력을 충분히 자각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할 남성 개인들의 노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곁에 있는, 혹은 광장에 모인 여성들의 요구와 삶의 처지를 지속적으로 듣고 또 듣는 자세가 먼저 갖춰져야만 한다. 표현이 다소 과격할 수도 있다. 과격해야만 주목받을 수 있는 것 또한 약자들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현실의 대다수 사람들은 대화를 시전하기도 전에 단절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는커녕, 갈등만 증폭돼 어느 한쪽이 먼저 나가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나가떨어지는 당사자는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매우 잘 알고 있다. 동등하게 맞짱 뜰 수 있는 힘과 권력이 없다는 이유로 부당한 요구를 끊임없이 감내하며 차별받는 개인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떤 용기 있는 개인들은 참고 참다가 상대방 혹은 집단에게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요구를 펼쳐 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원래 이 바닥이 이렇다는 이유, 혹은 기존에 짜여진 시스템에 헌신하지 않는 이기적인 개인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렇게 마음속에서 어렵사리 끌어올린 용기는 물거품이 되고, 나란 존재는 대화를 이어 나갈 권리조차 없다는 무기력함에 빠진다.

대화의 권리마저 특권이 돼 버린 시대다. 기성사회가 만들어 놓은 권력을 가지지 못하면, 평범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행위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로 달려가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좋아요' 버튼을 갈망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당당히 문제해결을 요구하며 나를 괴롭히는 상대방과 협의하고 조정해 나간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러니 차별받는 개인들은 더욱 파편화돼 국가권력에 개입할 여지는 도무지 보이지 않고, 이미 거대하게 뭉쳐진 집단은 기존 이해관계와 관성 속에서 그들끼리의 대화만을 이어 간다.

일례로 국회에서 거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양당은 한국 사회를 구원하겠다고 서로를 비난하며 정치적 우위를 선점하려는 노력을 펼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양당은 두 손을 맞잡으며 민심을 위해 국회를 정상화하겠다는 시시한 레퍼토리로 결말을 짓기 마련이다. 이렇게 그들의 존재증명은 비난과 화합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다른 목소리와 대화할 여지를 차단하며 정치적 동맹을 이어 간다.

마이크를 가지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힘들다고 외쳐 대고 있다. 기성 권력은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현장에 다가가는 다양한 노력을 펼친다. 그렇지만 차별받는 당사자들이 제도권 내에서 협상을 펼칠 권한은 허락하지 않는다. 매우 선심을 써서 자리를 건네줄지언정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할 뿐이다. 기성 권력의 관심사는 파편화된 개인들의 불안정한 삶보다도, 오로지 내 편인지, 적의 편인지를 두고 세력 확장에만 머물고 있다. 시대가 흐를수록 개인이 겪는 문제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첨예해지는데,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눠 누구 편인가로 판단하겠다는 잣대에 과연 어떤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이것은 대화를 통해 갈등을 좁혀 나가겠다는 것이 아닌, 그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편 가르기에 불과하다.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 위원인 청년유니온·전국여성노조·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본위원회에 두 번 불참했다.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목적으로 새롭게 개편된 사회적 대화기구 취지에 반하는 방식으로 탄력근로제 확대가 산하 위원회에서 합의되고, 이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기에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가 시대적 과제에 걸맞게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대안을 각계각층이 강구하는 노력은 전혀 없고, 오로지 청년·여성·비정규직 본위원회 위원들이 결국 경사노위 편에 설 것인지, 말 것인지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잣대야말로 겁박이다. 지금 경사노위에 필요한 논의는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문제를 재진단하고, 파국에 치닫게 된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각계각층이 충분한 대화를 해 나가는 것이다.

대화가 종말된다면 조직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스피커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사노위가 당장 해체되는 것이 청년·여성·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아니다. 어떻게든 사회적 대화기구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는 데 우리 사회가 힘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에 ‘사회적 대화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기획했다. 청년유니온과 전국여성노조·한국비정규노동센터·참여연대가 공동주최한다.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경사노위 무용론이란 손쉬운 구호만을 공허하게 외치는 게 아닌, 일터와 삶 속에서 권리를 박탈당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대화가 어떻게 대안을 제시해 나갈 수 있을지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heol3710@hanmail.net)

김병철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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