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원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정권이 바뀌어도 노동자들은 어수선하다. 그 와중에 발견한 희망을 말하려니 조금은 씁쓸하다.

지금까지 공공기관은 수행하는 업무 일부를 직접 채용한 노동자가 담당하게 하지 않고 다른 업체를 통해 맡도록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면서도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당장의 이익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공공기관으로서 감당해야 할 공적 책임이나 그에 따른 다양한 요구에는 눈감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업체를 중간에 끼워 넣어 사용자 책임을 외면하려 했다.

더는 이러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면피는 어렵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 정부 들어 중간에 낀 업체를 들어내고 이들을 직접고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를 추진하는 정부나 사용자 내지 그 사용자에게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 역시 준비가 안 돼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정규직화를 추진하며 정부도 사용자도 어정쩡한 위치를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정부나 사용자의 의지나 문제의식이 높지 않았기에 애초부터 기대가 크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의 문제의식은 같은 노동자로서 어떤 입장에 서 있을까였다. 과연 사용자와 비정규직 사이에 위치하던 위탁업체가 사라진 자리에 머물게 된 정규직은 어떤 입장일까? 기대는 대개 실망에 머물렀지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조그만 희망을 봤다. 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매우 밝았고 적극적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만나 참아 왔던 억울함을 토해 냈다. 정규직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임금에 있어서는 불리하게 취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같은 공간에서 정규직은 나중에 들어와 단순한 일을 맡고 있는데 임금에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었다. 여기까지는 그간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은 나를 신나게 만들었다.

그 노동자가 나에게 오도록 이끈 이는 다름이 아니라 그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였던 것이다. 차별에 불만만 있었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던 그에게 방법을 알려 줬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도움이 될 자료도 함께 손에 쥐여 줬다고 하니 비정규 노동자는 어둠에서 빛을 발견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믿음에 대한 응답에서 오는 힘이라고나 할까.

대개 차별적 처우가 문제된 사건에서 비교대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편에 서면 그 사건은 하나 마나 한 사건이 된다. 사용자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한편에 선 노동자를 당해 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자가 서로의 일이 다르지 않고 대체가 가능하다고 앞서 말하는데 사용자로서도 기댈 곳이 없지 않겠나.

그래서일까 공항에서 온 그 노동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위원회 심문회의가 열리기 전에 사용자가 먼저 정규직과 동일하게 대우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노동조합 사무실에 감사의 뜻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텔레비전을 놓아 주기로 했다는 말도 보탰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신나고 어깨에 힘이 돌았다.

어쩌면 답은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을 하는 이유는 혼자가 아닌 집단의 힘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여기서 다른 고용형태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정규직화도 비슷하지 않을까?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이 없는 것보다 못한 경우일 수 있다. 잠시 서서 그 집단 속에 내가 있지 않나 돌아볼 일이다. 누군가의 노동 위에 서 있을 수 없듯 나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가 없나 살펴볼 일이다. 그랬다면 그에게 빛이 새어 갈 틈을 만들어 주자. 그 틈으로 작은 희망을 드리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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