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민 공인노무사(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사무국장)

안녕하세요.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사무국장 김재민입니다. 김형동 변호사님의 <매일노동뉴스> 3월14일자 칼럼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내용에 대한 치밀한 평가와 분석, 대안 제시는 환영한다 하셨기에 졸문이나마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단순한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가 노사 누구에게 유리할까요? 아무리 봐도 노동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문자 그대로 노동자 생명이 위협받기 때문입니다. 고용노동부의 과로사 산재인정 기준은 4주 평균 64시간만 넘더라도 과로사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변호사님이 굳이 “40주 연속 64시간 노동이 가능하다고 보이지만 현실에서 그럴 수는 없다”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예시의 10분의 1의 기간의 과로에도 과로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논의의 시작과 과정을 다시 한 번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논의는 지난해 “노동시간단축”을 입법화하면서 시작됐고, 당시 국회는 “2022년 12월31일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하라고 부칙에 명시했습니다. 그런데 법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노동시간단축과 관련한 의제가 사라졌습니다. 과연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가 노동시간단축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합의가 입법화하면 변호사님이 드신 예시인 40주 연속 64시간 노동이 법적 최저기준으로 적용되게 됩니다. 40주 연속 64시간이 가능한 게 노동조건 최저기준을 정하는 근로기준법상 제도로 적당한지요? 게다가 최저임금에서도 알 수 있듯 최저기준이 최고기준으로 적용되는 취약계층에게 제도가 어떻게 적용될지 상상조차 못하겠습니다.

변호사님이 제안하신 임금보전 방안 등에 대한 고민은 새겨들을 좋은 제안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는 임금손실을 막을 수 없어 보입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일을 더하면 가산금을 지급하라는 근기법의 원칙을 벗어난 예외적 제도입니다. 노동자에게는 손해가 발생할 것은 자명하고 나아가 원칙을 벗어나는 예외적 기간이 확대되면 가산수당 지급이라는 임금체계 전반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문제점이 이번 합의로 일부라도 보완될 수 있나요?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은 오후 10시 퇴근 오전 9시 출근이면 충족되고, 임금보전 방안 미신고시 처벌조항은 벌금도 아닌 과태료에 불과합니다. 합의 과정과 결과를 어찌 비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사회적 대화를 부정하거나 경사노위를 해체하자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경사노위와 사회적 대화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주체에 책임은 분명 물어야 합니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노동자대표 위원 중 한 명이고 의결표 역시 1표입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조직노동의 계급대표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사노위는 출범부터 조직노동과 취약계층의 대표성을 분리했습니다. 그 결과로 노동자위원 4명이 위촉됐고 조직노동은 조직노동의 대표성을, 취약계층은 취약계층의 대표성을 보장하도록 구성했습니다.

그런데 어땠습니까. 미조직 노동자들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면, 취약계층 대표자를 합의 과정에 포함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합의 과정에서 취약계층 대표 3인을 곁다리·장식품 취급하고 “합의했으니 추인만 하라”는 태도를 지금까지 견지하지 않았습니까? 이러고도 사회적 대화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겠습니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대표” 제도는 권한이 많고 강력함에도 선출방식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는 대표적인 입법미비 조항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유연근로제 도입사업장 2천436곳을 분석한 결과 70.5%에서 근로자대표와의 합의 없이 제도를 시행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진정한 사회적 대화라면 취약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논의 이전에 이러한 입법미비와 보완책부터 짚었어야지요. 그 뒤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논해야지요. 이런 부분을 논의하라고 취약계층 대표를 뽑았는데, 다 빼고 합의한 뒤에 이제 와서 취약계층 보호를 고민하는 건 앞뒤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기 위한 합의가 경사노위 첫 합의로 적절한가요? 합의 과정은 민주적이고 정당했습니까? 노동시간단축은 아직 그 효과도 나타나지 상태에서 과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결단으로 포장하기에는 너무 앞서 나간 것이 아닐까요?

저희 노노모를 비롯한 5개 노동법률가단체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저지를 위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7일까지 광화문 경사노위 앞에서 단식·천막농성을 했습니다. 이달 5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90여명의 법률가들이 모여 노동변호사 1세대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법률가 278명이 연서명한 항의서한을 전달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나서는 이유는 이번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 합의가 노동자에게 불리한 제도임이 명백하고 그 합의 과정이 사회적 대화의 틀을 현저하게 벗어났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악법은 아무리 고치고 포장해도 악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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