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제도개선을 논의 중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이 "3월 말까지 합의안을 도출하자"고 노사 단체에 촉구했다. 경사노위는 합의가 되지 않으면 논의경과와 내용을 국회로 넘길 계획이다.

재계와 보수야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입법전망이 밝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먼저 협약을 비준한 다음에 입법절차를 밟는 ‘선 비준 후 입법’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사관계 개선위 공익위원들 “3월까지 합의하자”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 공익위원들은 18일 ‘ILO 기본협약 비준 등에 관한 노사정 합의를 위한 공익위원 제언’을 발표했다. 공익위원들은 “ILO 기본협약 비준의 의미와 시급성, 그간 논의 과정에서의 노사 입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사 간에 타협 가능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3월 말까지 우선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완료하자”고 요청했다.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는 지난해 11월 단결권에 관한 공익위원안을 발표한 뒤 단체교섭·쟁의행위 관련 제도개선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실무협상을 마지막으로 논의를 중단했다.

공익위원들은 재계의 협상태도를 지적했다.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는 ILO 핵심협약 비준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데도 재계가 그 부분을 강하게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결권과 재계가 요구한 단체교섭·쟁의행위 제도개선은 주고받기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공익위원들은 노사가 이달 말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논의내용을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단결권 제도개선안과 달리 공익위원안을 내지 않을 방침이다.

노사가 합의해도 자유한국당이 '발목'

재계는 3월 말까지 합의안을 도출하자는 공익위원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한국경총은 “공익위원 제언은 경영계 요구사항 중 핵심은 뒤로 미루자는 것으로, 노동계 의견에 경도돼 있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노사가 합의해 국회로 넘어가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포함한 관련법 처리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자유한국당 반대가 거세다.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기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학용 환경노동위원장은 최근 재계 요구를 수용해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단결권에 관한 공익위원안을 반영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맞불 성격이 짙다.

김학용 의원은 이날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ILO는 노동권 보장을 위해 8개 협약의 비준을 권하지만 강제할 권리는 없다”며 “상호 협력관계인 선진국 상황을 강성노조에 의해 수시로 파업이 이뤄지는 우리 상황에 무조건 맞추라고 하는 건 일종의 갑질”이라고 주장했다.

“선 비준으로 관련법 개정 계기 만들어야”

노사정 합의와 국회 입법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대통령이 핵심협약을 먼저 비준한 뒤 국회 동의와 관련법 개정 절차를 밟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인 2017년에도 이런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회적 합의에 이은 국회 법 개정, 대통령 비준으로 이어지는 방법을 선호했다. 당시에도 노사정 합의와 여야 합의 가능성이 낮은 만큼 정부가 비준을 서둘러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랐다. 대통령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행위 자체로 국회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ILO도 선 입법 후 비준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팀 드 메이어 ILO 선임자문관은 지난해 10월 노사발전재단 주최 토론회에서 “ILO 역시 협약 비준 전에 관련법 정비를 완료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비준은 협약 기준을 국내적으로 준수·이행하겠다는 정치적 실천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해 왔다”고 밝혔다.

윤애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대외협력부위원장은 “노동 3권을 제한하는 단결금지법으로 기능하는 우리나라 노조법을 노사 합의로 개정한 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며 “협약을 먼저 비준하고 그것을 모멘텀으로 삼아 법과 관행을 국제기준에 맞게 개선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 경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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