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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유의 노동 개념 ②
▲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시몬 베유의 노동 개념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전개되는데 첫 번째, 인간의 노동이 사유와 행위의 결합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 설명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나머지 두 개의 차원에 대해서 살펴보자.

시몬 베유의 노동 개념 두 번째는, 인간의 노동은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의 결합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다. 벽돌공이 집을 지을 때 흙과 돌과 땅이라는 외부 물질세계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벽돌공 자신에게도, 육체와 정신 양 측면에서 모두 변화가 일어난다. 자신이 머릿속에 그렸던 집이 실제로 눈앞에 완성된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벽돌공의 정신세계는 자부심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이것이 노동의 할 수 있음이다. 그러나 노동을 통해서 세계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즉각 실현될 수는 없다. 물질이 저항하기 때문이다.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내 눈앞에 집이 나타나게 할 수는 없다. 인간의 노동이 신의 관조와 다른 점이 이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 밭에 나가 보리의 싹을 한 마디씩 뽑아 올려놓고서는 보리가 자라도록 도와주고 왔다고 자랑하는 농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맹자> 공손추 상편의 ‘조장(助長)’은 노동이 결실을 맺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 조급한 농부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이야기다. 노동은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과 시간이라는 외부의 조건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이것이 노동의 할 수 없음이다. 노동에서 유리된 인간은 자신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착각하는 망상에 빠진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이성적 존재로 거듭난다.

셋째, 인간의 노동은 필연과 자유의 결합이다. 인간은 살기 위해 노동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곧 필연의 측면이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 조건일 뿐이며,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 전체가 필연의 고리 속에 갇히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더군다나 그것이 노동을 둘러싼 부당한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필연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제되는 조건이다. 그러므로 흔히 필연은 자유와 대립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는 필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필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자유는 필연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필연을 긍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사유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는 스스로의 사유에 따라 행위해 사유가 의도한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다. 자유와 필연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필연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필연의 왕국을 줄이는 만큼 자유의 왕국이 늘어난다고 누군가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노동을 여전히 억압의 영역에 남겨 둔 채 노동 바깥에서만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만이 아니라, 노동 안에서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몬 베유는 노동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를 인간적인 노동이 되도록 변화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생각과 말의 힘을 되돌려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 바깥에서가 아니라 노동 안에서. 이러한 노동 개념은 적정한 수준의 생산성하고만 양립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곧 속도를 늦춘다는 것이니까. 기계의 속도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벗어날 때 노동은 비인간적인 노동이 된다. 왜 기계의 속도는 끊임없이 빨라지는가?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해서다. 인간적인 노동은 기계의 속도가 인간의 리듬과 부합할 때 비로소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의 규모를 줄이고, 대규모 산업 시스템을 소규모 작업장 시스템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시몬 베유의 노동 개념은 사회적 분열과 생태적 위기 앞에 놓여 있는 우리 시대에 유난히 잘 들어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생산성과 효율성에 사로잡혀 있는 이 시대가 과연 이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박제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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