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진 한국노총 정책국장

4차 산업혁명이 경제사회 전반의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주요 어젠다로 세계적 관심을 받다가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국을 계기로 사회적 관심이 폭발했다. 기술이 미래를 좌우한다는 기술결정주의와 4차 산업혁명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됐다. 노동의 미래를 놓고도 비관적 예측과 낙관적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혁명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정부 관료와 전문가집단, 기업이 주도하며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기술혁신에 편중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과 자동화기술이 불러올 산업과 사회의 변화는 확정된 미래이며 혁신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확산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를 배경으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에 맞설 수 있는 토종 플랫폼 산업의 성장과 혁신적 스타트업 기업들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핵심 과제로 은산분리 완화·규제샌드박스 도입·카풀 합법화 등 규제완화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극과 극을 달린 노사정 시각차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에서 한국노총은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정책논의와 결정 과정에 노동이 배제된 것과 관련해 비판 목소리를 냈다. 관련 논의에 노동계 참여가 이뤄져야 하고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이 조화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노사정 주체들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공동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권리를 위협하고 특권과 불공정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규제완화에 반대했다.

노사는 논의 초반에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제안 의제와 사회적 대응방향에 있어 현격한 입장차이를 확인했다. 그래서 노사는 디지털 전환의 개념과 실태 파악을 시작으로 노사 공통으로 필요성을 인정하는 ‘노사공동 일터혁신방안’과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플랫폼 노동 보호방안’을 우선 논의의제로 삼았다. 한국은 물론 해외 선진국에서 정부와 기업, 노동조합이 디지털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살폈다.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한계와 문제점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한 의견제시와 검토가 이뤄졌다. 한국노총은 자동화기술로 인한 일자리 대량 파괴와 격차 심화 위험성이 존재하는 만큼 노동자의 실질적인 고용안정과 기존 일자리 보호·단결권과 교섭권 확대·사회안전망 대폭 확충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논의 진행 과정에서도 노사정 시각차이는 존재했다. 그럼에도 노동이 배제되고 기술혁신에 편중됐던 기존 정부주도 방식은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은 성과다. 노사정 주체들의 협력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일정 정도 형성됐다. 카풀앱 등 디지털 플랫폼 확산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단지 기술혁신과 신산업 육성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제도적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에도 의견을 모았다.

구체적인 대응전략과 과제까지 정리되지 못한 한계는 있지만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에서 6개월간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디지털 전환에 대한 노사정 기본인식과 정책에 관한 기본합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합의문에는 디지털 전환 의미와 경제·사회·노동에 미칠 영향, 노사정의 준비 정도와 주요 과제, 노사정 협력 필요성과 공동과제를 담았다.

경제·기술에 편중된 기존 논의 한계 뛰어넘다

기본합의는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 발표대로 과거 정부 주도나 학자 중심 논의에서 벗어나 노사정이 함께 참여해 공동의 대응방향을 모색했다는 점에 가장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기술결정론적 시각과 경제와 기술에 편중된 논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점 또한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제한된 논의 일정으로 노사정이 현재 합의가능한 내용들만 담았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디지털화 그늘에서 장시간 노동과 노동착취에 시달리는 수많은 IT노동자를 포함해 현재진행형 문제들에 대해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재벌·대기업 위주 성장정책과 원·하청 간 불공정거래가 기업들의 혁신을 저해하고 취약한 사회안전망과 노동권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등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생략돼 있기도 하다.

한국노총은 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이해대변을 통해 향후 계속될 사회적 대화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해법을 찾고자 한다. 한편 취약한 노동권과 사회안전망,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의 극복이 한국 사회를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회혁신 과제들을 적극 제기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