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현대중공업에 득이 된다고요? 재벌 오너 일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죠. 노동자들과는 상관없습니다."

박근태(55·사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의 말이다.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의 민영화 본계약이 체결된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 진입하려는 노조 대우조선지회 조합원들의 투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박근태 지부장의 표정은 무거웠다. 지부 대의원들보다 일찍 대우조선지회 상경투쟁에 함께한 박 지부장은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은 결국 조선산업 붕괴로 이어지고, 모든 짐이 노동자들에게 지워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벌가 배불리기에 노동자 삼중고"

박근태 지부장은 이번 인수합병이 현대중공업에 호재라고 보는 시각을 반박했다. "재벌이 특혜를 받는 거지, 노동자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동자들에게는 착취구조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이고, 구조조정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 간 본계약 체결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 지배구조가 달라진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중간지주사인 조선합작법인 아래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 4개 계열사를 둔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중간지주사를 지배한다.

박 지부장은 "현대중공업이 가지고 있던 투자부문이 조선합작법인으로 넘어가면 현대중공업은 비상장 사업회사로 남게 된다"며 "한마디로 깡통회사가 된다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7년에도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만든 현대오일뱅크와 현대글로벌서비스 같은 수익성 좋은 자회사를 현대중공업에서 분리해 지주사로 편입시켰어요. 오너들 배를 불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익성 악화로 구조조정·임금삭감·복지축소 삼중고를 당했습니다. 같은 상황이 또 한 번 반복될 수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손 놓고 바라만 보겠습니까."

"노동존중 사회 만들겠다더니 자본존중 사회 가나"

박 지부장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동반부실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잠시 수주가 늘어난 것일 뿐 조선 경기가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다"며 "이런 시기에 '슈퍼 빅체제'로 묶어 놓고 몸집만 불려 놨다가 조선 경기가 다시 안 좋아져 일감이 없어지면 모든 피해는 노동자 몫이 되고, 조선산업 전체 붕괴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간 온도차는 있다.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이라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구조조정 파고가 당장 덮치는 게 아니어서 집행부가 "매각 반대"를 외치며 강경투쟁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박 지부장도 이런 조합원 정서를 인정했다.

"지난 4년간 투쟁으로 조합원들이 많이 지쳐 있고 피로도가 심한 건 사실입니다. 조선사업장만 있는 게 아니고 건설기계·일렉트릭·지주사도 함께 있다 보니 받아들이는 강도가 달라요. 하지만 조합원들이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반대하는 건 분명합니다."

그는 "그동안 회사가 어렵다며 임금 반납해라, 상여금 분할해라, 단체협약 축소하겠다 해 놓고 뒤에서 대우조선을 인수한다는 것 자체가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인수합병 후 나타날 리스크는 전혀 감안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회사나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해 놓고 재벌에게 퍼 주는 자본존중 사회로 가고 있는 정부나 모두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박 지부장은 "지금이라도 인수합병을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며 "노사정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전체 조선산업 생태계가 살아나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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