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지난 주말 개인적인 일로 상하이에 들렀다가, 때가 때인 만큼(3·1 운동 100주년) 오랜만에 정부청사를 다시 찾았다. 초봄이지만 변덕스런 상하이 날씨 탓에 생각보다 훨씬 쌀쌀했다. 정부청사 앞은 다양한 인종이 줄지어 지나가고 해외 유명 브랜드를 내건 쇼핑몰이 즐비한, 상하이에서도 가장 번화한 거리다. 100년 전 임시정부가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변두리였을 이곳(황포구 마당로)에서 대한민국이 시작됐다.

골목길 안쪽 좁디좁은 2층 주택이 정부청사의 전부다. 그간 내부는 좀 더 정돈된 듯하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10여년 전에 비해 보존상황이 나아졌다. 100년 전 김구 선생과 선열들이 활동한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려는 정부 노력이리라. 안타까운 것은 청사 관리는 여전히 중국측에서 한다. 우리 국민이 우리 정부청사에 입장하는데도 그들이 입장료를 받는다. 점심시간에는 아예 관람을 막는다. 혹여 대규모 재개발이라도 된다면 헐릴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뿌리를 영구히 보존하는 방안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임시정부는 3·1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에서는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며 만세운동이 임시정부 탄생의 기초였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든든한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35년간 광복운동을 줄기차게 이어 왔다.

식민지 시기 3·1 운동에서 노동운동은 어떠했는지 알고 싶어진다. 이원보 선생은 “일제의 식민지 조선반도에서의 노동운동은 곧 민족해방운동이었다”라고 그의 책(한국노동운동사 100년의 기록)에서 쓰고 있다. 선생은 “노동자들은 일제의 식민지적 착취와 종속에 반대하는 경제적 투쟁을 격렬하게 전개했고 민족차별·인권탄압에 단호히 반대함으로써 반일민족해방을 지향했다”며 조선의 노동운동이 처한 운명을 “처음부터 식민지 조선의 노동운동은 그럴 운명이었다”고 정리한다.

3·1 운동에서도 노동자들의 참여는 그 누구 못지않았다. 3월3일 겸이포제철소 200여명, 3월7일 경성동아연초공장 500여명, 3월9일 경성전차 운전부 노동자 및 차장들의 파업, 3월19일 괴산노동자들의 만세시위, 3월27일 직산금광노동자 100여명의 일본헌병주재소 습격 등이 있었다(위 책 49쪽). 3·1 운동 이전에도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일제의 식민자본 지배에 반대하며, 작게는 일본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인상 등 경제적 요구를 넘어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고 평가된다(위 책 50쪽).

잘 알려져 있듯이 1919년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정하는 매우 중요한 해였다. 노동문제를 다루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설립됐다. 그리고 100주년을 맞은 올해 국내에서는 ILO 핵심협약 98호·87호 비준 논의가 한창이다. 그런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합의 단계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국회에서 비준되리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나을 듯하다.

100년 전 오늘로 눈을 돌려 보면 이러한 고민을 하는 우리는 한참 모자란 후손들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까울 지경이다. 100년 전 그리고 일제식민지 치하에서도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분연히 결사의 자유를 외치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더 나아가 사소한 개인의 목적이 아니라 민족광복이라는 큰 뜻을 노동운동을 통해 만들어 나갔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단결권과 단체행동을 누리고 이에 관한 상당한 수준의 이해를 발전시켰다.

지난 100여년 기간, 우리 민족은 광복과 남북 분단, 30여년에 가까운 군사정권을 힘겹게 지나온 탓에 원래 누리던 노동기본권 본성이 잠시 억눌러져 있을 뿐이다. 비준 논의 중인 핵심협약의 각 내용은 우리가 가져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누리고 있었던 기본권일 뿐이다. 이를 되찾는 것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잠시 묻어 뒀던 권리의 확인이나 회복에 불과함이 분명하다.

노동기본권이 문명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천부의 권리라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나.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소원한 김구 선생이 말씀하신 ‘문화의 힘’ 원천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은 자유권의 핵심 내용이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문화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는 김구 선생의 말씀을 되새길 때다. 김구 선생의 눈에는 현재 우리나라의 자유와 노동에 대한 기본권 수준이 식민지 시대 중에도 1930년대 병참기지 시대나 다름없다고 꾸짖지 않을까.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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