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가 지난달 19일 탄력근로제 개선 노사정 합의문을 도출한 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사정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대신 보완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의무화와 임금보전 방안 신고제도다.

하지만 이런 보완장치들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근로자대표와 사용자의 서면합의로 보완장치들이 무력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장으로 노사정 합의를 주도했던 이철수(61·사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입장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오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회의실에서 진행했다.

- 노사정이 노동자 과로방지와 건강보호를 위해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에 합의했다. 그렇게 해도 고용노동부 만성과로 방지고시 기준을 초과한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근로일 간 11시간 의무휴식제 의미는 크다. 이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노사정 합의 전날인 지난달 18일 민주노총이 경사노위를 항의방문해 전달한 문서에서 의무휴식제 도입을 요구했다. 한국노총도 협상 과정에서 의무휴식제를 요구했다. 노동계가 과로를 막을 수 있는 유력한 장치로 주장한 게 의무휴식제다.

노동부 과로기준 중 하나인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주 40시간 근무에 탄력근로 12시간, 그리고 연장근로 12시간을 해도 최대 64시간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노동부 고시에 나오는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건 의무휴식제로 커버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1주 최대 64시간이라는 것은 노사가 탄력근로 도입에 서면으로 합의하고, 근로자가 연장근로에 개별적으로 동의해야 가능하다. 노사합의로 12시간 의무휴식제를 도입하든지 해서 막을 수 있다. 무조건 과로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노조가 주장한다면 자기존재 부정이다.

노동부 과로기준 고시는 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내부지침일 뿐이다. 현재 과로기준에 대한 법적 개념이 없다. 이번 합의가 과로라는 개념이 법적 개념으로 들어올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고 본다.”

“11시간 연속휴식, 과로 법적 개념 단초”

-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하면 의무휴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내용이 있지 않나. 

“노사정 합의 내용은 ‘의무휴식제 또는 서면합의시 예외’가 아니다. 의무휴식제를 시행하되 불가피한 경우 서면합의로 예외를 두자는 개념이다.”

- 근로시간 사전확정은 일단위에서 주단위로 변경했다. 최소 2주 전 통보 규정을 뒀지만 서면합의시 근로자대표와 협의해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주별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지만 불가피한 경우로 한정했다. 원래 정해진 평균 근로시간을 유지하도록 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만약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협의 없이 또는 근로자대표 의견을 무시하고 근로시간을 변경한다면 근로자대표가 다음에 탄력근로 도입에 합의해 줄 리 없지 않나.”

“서면합의 비판하는 이들, 자기부정 또는 무지”

- 임금보전 방안 신고의무와 관련해서도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하면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근로기준법은 최소기준이자 강행규정인데, 이 기준을 밑도는 내용을 서면합의로 허용하는 내용이 많다.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 내용은 없다. 의무휴식제는 강행규정을 저하시킨 것이 아니라 예외규정을 둔 것이다. 주 40시간 기준인데 주 42시간 합의를 허용하자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또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서면합의 제도를 둔 것이다. 서면합의로 강제하자는 취지다. 예를 들어 1만원을 보전해야 하는데 7천원만 보전하는 합의는 무효가 된다. 현행 제도에서는 보전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서 신고의무와 과태료라는 강제규정을 둔 것은 정책적 배려다. 노조 대표성이 약하거나 노조가 없는 사업장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유력한 장치다. 노조가 없으면 누군가는 모니터링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래서 신고를 받도록 했다. 신고를 하기 싫으면 노사가 합의해서 안을 마련하라는 얘기다. 서면합의가 안 될 것에 대비해 노동부가 (신고를 하라고) 관여하는 것이다. 물론 근로자대표와 사용자가 편법적인 내용으로 서면합의를 할 수는 있다. 이를 어떻게 메워 나갈 것인지는 우리의 숙제다. 정부의 노력, 노동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 조합원들을 위해 탈법이나 편법 관행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근로자대표 제도가 부실하다는 비판에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근기법상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 제도는 외환위기 때 도입됐다. 서면합의를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탄력근로에만 해당하는 제도가 아니다. 노동 전반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안전장치를 불온시하면 다른 대안이 무엇인지를 내놓아야 한다. 근로자와 사용자 개별합의로 가자는 얘기인가. 개개인 의사보다는 대표의 힘을 통해 교섭력을 부여한 것이다.

노조가 없거나 약한 곳이 있다면 그들의 힘을 키워 주는 곳은 누구인가. 노동계다. 노동계의 숙제다. 자기들의 역할이 필요한데, 서면합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정치가나 운동가가 주장하면 모를까, 노조가 그런 주장을 하면 자기존재 부정이다. 학자가 그런 주장을 한다면 무지의 소치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 이익대변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시대적 화두다. 그런데 탄력근로만 가지고 비판하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지금 시행 중인 3개월 단위 탄력근로에 대해서는 왜 가만히 있었나.”
 

▲ 정기훈 기자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기업, 많지 않을 것”

-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는 정부와 여당이 결론을 내린 의제였다. 시한까지 못 박았다. 좀 더 여유를 갖고 논의했으면 보완이 됐을 텐데.
“노동시간제도개선위는 정부와 여당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결론을 정해 놓지도 않았다. 오직 명확하게 한 것은 2월까지는 끝내자는 것이었다. 국회 차원에서 2013년께부터 논의했던 것이기 때문에 노사 입장은 분명했다. 시간을 끈다고 더 좋은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적 대화 참여자들의 고충을 긍정적으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 현재 탄력근로를 도입한 사업체는 3.2%, 노동자 기준으로는 4.3%다. 이번 합의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나.
“탄력적 근로제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매우 예외적인 제도다. 특정시점에 많은 시간을 배정하고 다른 기간에 그에 상응하는 적은 시간을 배정해 조직관리를 할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사용자들이 웬만하면 단위기간을 3개월로 하지 6개월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전담부서를 만들어 3년간 모니터링하겠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오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시간제도개선위에서 논의한 탄력근로 문제는 협소한 주제다. 그런데도 판을 너무 키웠다. 노동시간제도 전반을 논의하지 못한 게 아쉽다. 노동계 주장처럼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재계 주장처럼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논의해야 한다. 탄력근로 합의는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더 큰 것을 위한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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