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영 기자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2011년 유성기업 직장폐쇄·2017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 정리해고와 극한의 노사갈등, 중대재해로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진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우리 사회가 노사갈등을 중재하고 외상을 치유하는 것을 넘어 노동자 내면치유를 통해 무너진 그들의 일상을 복원하는 데 주력해야 함을 일깨운 사건들이기도 하다.

무한경쟁과 갈등, 상처가 반복되는 사회에서 숨 한번 내쉴 틈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이들이 있다. 보다 나은 사회, 함께 잘사는 사회를 위해 자신의 삶을 오롯이 내놓지만 정작 자신의 아픔과 상처는 돌보지 못하는 노동·사회활동가들의 마음을 돌보는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通統talk)’이다. 하효열 통통톡 운영위원장(56·사진)은 “트라우마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 극적인 상황에 직면하면서 겪게 되는 것”이라며 “타인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우리 사회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공간과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산업선교회 쉼힐링센터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하 운영위원장은 “우리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바꾸는 싸움에 내몰린 노동·사회활동가들이 위생병 하나 없이 전투에 나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해고자에서 상담심리사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만든 심리치유 공간인 통통톡은 “통하고, 함께하고, 이야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였던 하효열 운영위원장은 2001년 노조를 만든 뒤 해고됐다. 한창 현장 밖에서 노동운동과 대안교육 관련 일을 하던 그에게 노동계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가 2008년이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노조 상근활동가들도 굉장히 피폐해져 있더라고요. 정작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병폐를 치유하는 사람들이 아파할 때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는 2009년 재수 끝에 상담심리 공부를 위해 만학도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2011년 7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저지를 위한 2차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다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를 알게 됐고, 노동·사회활동가들의 심리치유를 위한 활동에 팔을 걷어붙였다. 하 운영위원장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한 심리치유공간 ‘와락’에 동참한 후 활동을 확장해 2016년 노동·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통통톡을 출범시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자본의 힘은 너무 센데 노동계가 싸움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설득할 만한 내공은 부족했어요. 계속 지는 싸움에서 노동계는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어요. ‘좀 더 잘했으면’ 하고 서로를 탓하고 있었죠.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며 삶을 바쳐 싸우는 이들이 내·외부 싸움으로 아파하고 있었어요.”

“노동계, 다시 함께 살아남을 희망 가져야”

통통톡에는 심리치유공간 와락·길목협동조합 심심·마음의숲 치유센터·영등포산업선교회 쉼힐링센터·충남노동인권센터 두리공감 등이 참여하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 누구나 상담할 수 있고 심리검사도 지원한다. 투쟁사업장과 농성장을 직접 찾아가는 치유활동은 물론 맞춤형 집단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전국 어디서건 누구나 가슴속에 눌러 놓은 상처를 꺼내 치유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상담과 심리치유에 부담을 가져요. 상담을 받는 것만으로도 ‘아픈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갖죠. 평판이라는 게 중요한 사회잖아요. 그래서 상담사들은 내담자 정보와 상담 내용을 철저하게 비공개로 해요. 그러니 믿고 찾아오셔도 돼요. 우리 모두는 꾹 쥐고 있는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야 해요. 그래야 나아요.”

하 운영위원장은 노동·활동가들의 마음을 돌보지 못한 노동계에도 쓴소리를 남겼다.

“세상을 바꾸려는 싸움에 어떻게 위생병 하나 없이 내보낼 수가 있나요? 전투하다 부상을 당하면 치료를 받아야 하잖아요. 노동계에는 위생병이 없어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활동가들을 방치했어요. 반성해야 합니다. 함께 살아남을 희망을 가지고 노동운동을 했는데, 지금 우리는 내부 신뢰마저 잃은 채 각자도생하고 있어요. (싸움의 최전선에 있는) 활동가들을 보듬고 우리 안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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