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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도와주세요] 동료 마음속 SOS 들었다면 어떻게 하지?노동현장 '심리적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 나온다 … 충남노동인권센터 두리공감 8년 활동 담아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통은 상처를 남긴다. 때론 상처가 너무 깊어 삶을 이어 가는 것조차 버거워진다. 그럴 때 의지가 되는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준다면? 노동현장에 '심리적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이 필요한 이유다.

3일 노동계에 따르면 노동현장 심리적 위기상황 대처방안을 담은 매뉴얼이 다음달 발간된다. 매뉴얼은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이 제작하고 있다. 두리공감은 노동자들이 심리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을 돕기 위해 2011년 만들어졌다. 8년간 두리공감이 진행한 노동현장 위기개입 사례가 매뉴얼의 토대가 됐다. 두리공감은 사업장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하고 필요한 심리상담을 한다. 개별 심리치유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공동체 치유·회복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매뉴얼을 만드는 이유를 묻자 허윤제 두리공감 치유활동가는 "충남지역 노동현장에 유난히 심리적 재난이 많이 발생했다"는 말부터 꺼냈다. 김용균씨가 사망한 태안 화력발전소와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잇따르는 현대제철, 유성기업·갑을오토텍 같은 노조파괴 의혹 사업장 모두 충남지역에 위치해 있다. 두리공감이 처음 만들어진 것도 유성기업 노동자의 심리적 위기상황을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유성기업 직장폐쇄 이후 노동자들의 신체적 외상도 컸지만 정신적 외상이 상당했어요. 그때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우리도 해 보자고 뜻을 모았죠.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그들의 일상을 챙겨 보자고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노동현장을 덮친 심리적 재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10년간 30명의 죽음은 해고나 국가폭력이 노동자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처절하게 보여 줬다. 쌍용차 희생자 명단에는 해고자뿐만 아니라 가족 이름도 포함돼 있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연구팀과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해고자 부인 48%, 복직자 부인 20.6%가 "최근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유성기업을 중심으로 손해배상·가압류 피해노동자 정신건강 상태도 심각했다.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1주간 우울증상을 경험한 이들이 59.7%나 됐다.

심리학에서는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압도당하거나 심리적 불균형을 이룬 상태를 ‘심리적 위기상황’으로 진단한다. 스스로 균형을 찾아갈 힘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는 아니지만 고통이 사라지지 않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노동현장에서는 산재사고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됐을 때 심리적 위기상황에 처할 수 있다. 예컨대 사고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거나 반복적으로 꿈을 꾼다. 사고 현장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사고를 목격하거나 재해자를 구조했던 이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파산이나 부도·폐업으로 인한 직장상실도 심리적 위기상황을 초래한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실직은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일이다. 심각한 불안을 야기한다. 폭력도 심리적 위기상황을 만든다. 노조탄압이나 구조조정, 가학적 노무관리, 나이·고용형태·성적 차별, 직장내 성폭력이나 괴롭힘은 피해자에게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마음의 고통, 기업 노사문제나 개인 취약함으로 가려져

두리공감은 “노동현장의 심리적 위기상황은 다른 재난과 달리 폐쇄적이고 갈등적인 요소가 많다”고 지적했다. 기업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노사 모두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 위기상황에 대한 노사 간 시각차도 크다. 조기대응에 실패하거나 분쟁으로 이어져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탓에 노동현장의 심리적 재난은 그 빈도나 심각성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업장 노사갈등이나 경영문제로 치부하거나 노동자의 개인적인 취약함에서 원인을 찾는 경향이 강했다. 허윤제 치유활동가는 "노동자들이 심리치유를 위해 스스로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고, 위기상황을 참고 참다가 더 이상 못 견딜 정도로 힘들 때 치유활동가를 찾는다"며 "초기에 개입했더라면 어땠을까 안타까움이 크다"고 말했다.

응급처치 시작은 '위기대응 시스템' 만들기

노동현장에서 심리적 응급처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위기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고가 나면 119나 112에 연락하고, 구조활동을 하듯이 심리적 위기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을 안전하게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위기대응 시스템이 없으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이정호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산재 사망사고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경찰이 와서 사고경위를 조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고를 목격하고 극도의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노동자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다시 사고 과정을 더듬어야 한다”며 “고용노동부가 산재 트라우마 관리매뉴얼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환자 아니라 '피해 생존자'

심리적 응급처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에 처한 사람을 환자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하효열 통통톡 운영위원장은 “신체적인 외상이 있을 때 인공호흡을 하거나 심장마사지를 하는 매뉴얼이 있듯이 심리적 외상도 마찬가지”라며 “심리적 위기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환자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두리공감은 발간 예정인 매뉴얼에서 이런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두리공감은 매뉴얼 행동지침에 “심리적 응급처치는 치료단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며 “환자가 아니라 피해 생존자로 봐야 한다”고 적시했다.

허윤제 치유활동가는 “피해 생존자에게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심리적 불균형 상태가 왜 나타나고 있는지 본인이 알아야 한다”며 “그래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을 환자로 취급하면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아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심리치유가 정신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은 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심리상담을 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삶의 활력을 얻지만 그때뿐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리공감은 “노동현장에서 심리적 건강상태가 악화되는 것은 사실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 스트레스 관리나 술을 먹는 것으로 해소할 수 없는 만큼 건강한 공동체, 건강한 직장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반론보도

본지는 지난 2019년 3월4일자 2면 "[제발 도와주세요] 동료 마음속 SOS 들었다면 어떻게 하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성기업을 중심으로 손해배상·가압류 피해노동자 정신건강 상태도 심각했다"는 등의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성기업에서는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경희대 의료원에 의뢰해 검사한 결과 유성지회 조합원 중 고위험군의 비율은 2.7%였으며, 이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국인 정신질환 1년 유병률 11.6%보다 낮은 수치이다"고 알려 왔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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