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한다. 당사자인 노사 단체 개입력이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에 '고용에 미치는 영향'과 '경제상황'이 추가됐다. 객관성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속도를 늦추려는 속내로 결정체계 개편을 추진한 만큼 노동계 반발이 예상된다.

◇최저임금위 어떻게 구성되나=고용노동부가 27일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에 따라 지금의 전원위원회는 구간설정위와 결정위로 나뉜다.

구간설정위는 노사 단체 참여 없이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다. 노·사·정 추천을 통해 노사 단체 참여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노·사·정이 각 5명씩 15명을 추천하면 노사가 각 3명씩 순차배제해 최종적으로 9명을 뽑는다.

구간설정위가 제시한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결정위는 노·사·공익위원 각 7명씩 21명으로 꾸려진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초안에서는 구간설정위원이 결정위에도 들어갔는데 최종안에서는 빠졌다.

노사 위원은 여성·청년·비정규직, 중소기업·중견기업·소상공인 대표를 무조건 포함하도록 했다. 지금도 노사 단체가 이들 대표를 추천하는데, 이를 법에 명문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9명의 공익위원을 모두 추천하는 방식에서 국회와 정부가 각각 4명과 3명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이원화하면 어떻게 될까=정부는 "노사갈등을 줄이고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이원화했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노사 최초 제시안 격차가 너무 큰 데다, 최저임금 결정(32회) 중 노·사·공이 합의한 것이 7회에 불과하다는 이유를 댔다. 정부가 전부 추천하는 공익위원들의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감안한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는 구간설정위가 최저임금 인상구간을 제시하도록 할 방침이다. 구간설정위원들은 노·사·정이 추천하는 전문가로 구성한다.

결정위는 지금의 전원위처럼 노사 직접 참여를 보장한다. 국회에는 공익위원 추천권을 줬다. 그럼에도 정부 영향력은 건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간설정위원의 경우 노사가 순차배제를 하게 되면 정부 추천 전문가 위주로 꾸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신과 전문성 있는 인사보다 적당히 눈치 보는 인사들이 들어올 수도 있다. 순차배제 방식 탓에 노사 추천 공익위원은 대부분 탈락하고 노동위 추천 위원으로 자리를 채우는 노동위원회 사례가 대표적이다. 구간설정 과정에서 노사 추천 전문가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정부 추천 전문가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임서정 노동부 차관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공익위원 9명을 모두 추천했던 기존 제도에 비해 정부 영향력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 추천 전문가들이 배제되지 않고 남을 것에 대비해 공정성과 전문성·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추천하겠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은?=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근로자 생계비 △소득분배율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을 고려해 결정한다. 정부 개편안에서는 사회보장급여 현황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 경제성장률을 포함한 경제상황이 추가됐다.

정부가 초안에 포함했던 '기업 지불능력'은 제외됐다. “객관성과 구체성이 부족하고, 결과적으로 고용 증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고용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다.

객관성 논란은 여전하다. 최저임금과 고용의 연관관계를 증명할 만한 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상황을 보여 줄 수 있는 지표도 부족하다. 최저임금 수준과 경제상황 지표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은 “객관성과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기업 지불능력에 대한 잣대는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도 적용돼야 한다”며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기준으로 잡는 것 자체가 양극화 해소라는 법취지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임서정 차관은 “구간설정위 전문가들이 1년 내내 최저임금이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하기 때문에 다양하고 적합한 지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수준에 얼마나 영향 줄까=정부 관계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결정체계를 개편한다”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취임일성으로 “최저임금 인상속도가 빠르다”며 결정체계 개편을 거론한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을 포기했고,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효과마저 감소했다. 여기에 내년에 인상 폭까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구간설정위가 최저임금 상한선과 하한선을 제시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비정규직·여성·청년을 대표하는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들은 사퇴까지 고려 중이다.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을 맡고 있는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추려는 기재부의 꼼수”라며 “거취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법안 처리는?=국회에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과 관련한 법안 70여개가 계류돼 있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정부 최종안을 반영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는 결정체계 개편에는 이견이 없다. 약간의 진통은 있을 것 같다. 재계가 요구하는 ‘기업 지불능력’을 결정기준에 넣고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을 도입하자는 보수야당 목소리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학용 환경노동위원장은 “기업 지불능력·생산성·실업률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결정기준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은 정부안에 대해 “최저임금 1만원 시대 포기선언”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법안심사와 위원 구성 등을 고려하면 내년 최저임금 결정이 현행 최저임금법에서 설정한 시한인 8월5일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개정법 부칙에 내년 최저임금 결정에 한해 시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