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시몬 베유(1909~1943)는 인간의 노동에 관해서 누구보다 명철하게 사유한 프랑스 철학자다. 다소 추상적인 논의일 수는 있겠지만, 이 글에서 우리가 베유의 노동 개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산업주의가 초래하는 비인간적 노동을 가장 철저하게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책상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본인의 육체노동자 경험에서 직접 길어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시몬 베유의 노동 개념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전개된다.

첫째, 인간의 노동은 사유와 행위의 결합이다. 사유는 특정한 목적을 의도하는 것이며, 행위는 물질이라는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사유가 물질과의 대결 속에서 행위를 매개로 실현되는 과정이다. 인간의 노동은 사유라는 점에서 동물이나 기계의 노동과 구별된다. 동물이나 기계의 노동은 사유가 수반되지 않는 순수한 행위다. 순수한 행위는 그러나 행위(action)가 아니라 반응(reaction)에 불과하다. 진정한 행위는 사유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동물이나 기계는 사유에 기초해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 반응할 뿐이다.

꿀벌은 벽돌공보다 훨씬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지만 그것은 구상 과정을 거치지 않은 순수 행위의 결과물, 자연에 대한 즉자적 반응의 결과물이다. 반대로 벽돌공은 집을 짓기 이전에 이미 머릿속에 집을 짓는 구상 과정을 거친 다음 행위로 나아간다. 이것은 물질과의 대결 속에서 사유를 행위로 실현하는 과정이다. 기계의 노동도 마찬가지로 사유가 수반되지 않는 순수 행위의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알파고는 이세돌보다 훨씬 바둑을 잘 두지만, 그것은 사유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계산에 기반한 것이다. 이때 말하는 계산이란 이세돌이 집을 세는 행위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알고리즘 속에서 피드백을 통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직감이나 승부수 또는 무리수 같은 개념이 없다. 지금은 범용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있다고 하니 이것도 틀린 얘기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테일러주의로 대변되는 산업주의는 인간의 노동에서 사유를 제거하고자 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경향을 좀 더 가속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컴퓨터는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본떠 만든 것인데, 이제는 거꾸로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컴퓨터 작동 방식을 모델로 해서 설명하거나 제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인간의 행위를 신경회로의 연쇄적 반응으로 설명하는 것은 컴퓨터의 계산을 디지털 회로망의 연쇄적 반응으로 설명하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한 차원이다. 이미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는 인간과 기계와 동물의 행위를 모두 피드백에 의한 정보 처리 과정으로 같이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 이른바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전개한 바 있다. 최근의 스마트폰에 기초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이론을 기술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음식배달이나 대리운전 등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디지털 플랫폼노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플랫폼은 노동자의 스마트폰으로 고객의 주문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작업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이 디지털 정보는 시공간의 한계를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플랫폼 노동자들은 도시의 거리에 흩어져 항시 대기상태에 있다가 정보가 전송되면 곧바로 반응한다. 플랫폼 노동자는 공장 노동자가 공장주에게 종속돼 있듯이 플랫폼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가 디지털 정보 네트워크에 의해 제어되듯 플랫폼에 의해 제어된다. 인간의 노동에서 사유를 제거하고, 인간의 행위를 반응으로 전락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비인간적 노동 조직, 이것이 디지털 플랫폼노동의 본질이다.

인간의 노동은 또한 행위라는 점에서 신의 노동과 구별된다. 신의 노동은 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순수한 사유다. 이것은 기독교의 신 개념과 닿아 있는데 기독교의 신은 행위가 아니라 순전히 말씀으로만, 즉 순전히 생각으로만 천지를 창조했다. 순수한 사유는 그러나 사유가 아니라 관조에 불과하다. 진정한 사유는 행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은 관조가 아니라 행위이며, 행위는 사유를 외부의 물질세계와 대결시킨다. 인간은 물질과 대결하면서 자신이 관념만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기에 시몬 베유가 전개하는 노동의 두 번째 차원이 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짐)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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