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관홍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업무 내역을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 주실 수 있냐고 여쭈었더니, 만나서 말로 하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당연히 됩니다”라고 했고, 카페에서 만났다. 통화했을 때는 왠지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는데 웬걸,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덩치 큰 귀여운 곰 같으셨다. 벽이 있는 쪽으로 앉은 다음에 허리를 기대고 한숨을 내쉬시며 이제 좀 편하다고, 우리 같은 사람은 컴퓨터로 뭘 하는 게 영 쉽지 않아서 부득이 뵙자고 했다고 죄송하다고 하셨다.

거의 26년간 전철 검수작업을 하다가 최근 추간판 탈출 진단을 받으셨다. 검수업무는 쉽게 얘기하면 전철 전체를 검사하는 업무라고 보면 된다. 검사하고 이상한 게 있으면 교체하거나 수리해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매일매일 수시로 이뤄지는 도착검사와 며칠 주기의 일상검사, 월 단위 월상검사, 사고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의 특별검사 등으로 나뉜다. 차량 검사는 상부와 하부로 나눠서 한다. 우리가 객실에 들어가 있을 때 발 위쪽이 상부, 바퀴가 굴러가는 것과 관련한 부품과 장치들이 있는 쪽이 하부다.

젊었을 때는 멋모르고 젊은 혈기에 힘들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열심히 일했다고 하셨다. 워낙 무거운 장비와 부품과 장치를 들고 날라도, 허리를 굽히고 쪼그려 앉은 채로 차량 아래 비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해도, 일하다가 허리가 약간 삐끗해도, 공 한 번 차면 다시 괜찮은 거 같아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버텼다고 하셨다. 주변에도 모두들 그렇게 일한다고 하신다.

전철이 움직일 때 뭐가 필요한지 처음 들을 때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플랫폼에 서 있다가 전철 문이 열리면 객실에 타고, 도착지에서 내리면 끝이다. 보이는 건 플랫폼과 객실 내부, 도착하거나 출발하는 전철의 겉모습,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던 기차와 비슷한 외관을 지닌 신비로운 그것.

그런데 얼마 전 기회가 닿아 전철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전철 관련 업무는 크게 차량·기술·역무·승무로 구분할 수 있다. 역무와 승무 노동자는 직접 볼 수 있고 대략 어떤 일을 하는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차량과 기술 관련 업무를 수행하시는 분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차량 분야에서는 전철을 직접 검사·수리·정비하는 일을, 기술 분야는 전기·통신·궤도·기계·전차·토목·건축·승강장 안전문 등 전철을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데 필요한 시설·장치 운용과 관련한 구동·점검·수리 등의 작업을 한다. 중요한 작업은 전철이 움직이지 않는 야간에 한다. 우리 눈에 쉽게 보일 리 없다.

차량과 기술 같은 분야에서의 작업은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 도입됐다고 해도, 직접 몸을 써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망치나 정·드라이버·스패너 등을 이용해 부품을 조이고 풀고 옮기고 교체하거나 분해하고 수리하고 결합한다. 부품들은 수십 킬로그램에 이르는 것도 있어 무게가 상당하다. 그런데 글로 쓰니까 단순하고 어렵지 않은 일 같다. 차량기지를 방문해 움직이지 않고 땅에서 어느 정도 떠 있는, 그리고 여기저기 부품들이 잔해처럼 분리된 전철을 봤다.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 그래 그런 느낌이 들었다.

기지의 거대한 규모 때문이었을까,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전철의 시커먼 하부를 봐서였을까, 노동자들이 주로 쇳덩이로 만들어진 부품과 도구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옮기고 정비하는 장면을 처음 마주해서였을까. 왠지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전철은 그냥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허리와 목과 어깨와 무릎을 비롯한 온몸의 뼈와 근육이 녹아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많은 분들이 십수 년을 녹여 내고는 이제 본인들의 몸에 이상을 느끼고 있다. 그분들은 아직도 산재신청 절차를 복잡하게 느낀다.

승강장 안전문 정비를 담당하는 어느 분은, 차라리 밤에 승객들이 없을 때 일하는 게 나을 때도 있다고 하셨다. 낮에 일하다가 아이를 데리고 가는 누군가가 아이에게 “너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돼”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바로 그 아저씨가 얼굴에 튀는 철가루를 보안경과 마스크를 쓰고 맞아 가며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는 덕에 사고 없이 전철 잘 타고 다니는 거예요, 누군가氏.

전철 탈 때 한 번만이라도 떠올려 보면 어떨까. ‘아 이게 저절로 움직이지는 않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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