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파업은 노동자가 사용자에 의해 부여된 업무를 거부하고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용자가 노동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집단행위를 말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 보호를 비롯한 사회적 책임에는 관심 없이 오로지 이윤창출 목적으로만 기업을 악용하려는 자본가의 의도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파업의 목표가 된다.

노동자가 인간이 아니라 기계로 취급될 때,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일해 회사가 성장하는데도 그 열매가 노동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을 때, 회사가 사용자의 독재적 결정으로 지배당하고 경영에서 노동자의 목소리가 부정될 때, 노사 관계에서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할 국가가 사용자와 결탁해 반노동자 정책을 펼칠 때, 노동자가 시민이 아니라 노예로 대접받을 때, 다시 말해 노동자가 일하는 일터와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이익을 개선해야 한다고 느낄 때 노동자는 파업이라는 수단을 선택하게 된다.

파업은 헌법이 노동자에게 부여한 노동 3권의 하나로 노동자의 권리다. 대한민국헌법 21조는 국민에게 결사의 자유(freedom of association)를 보장한다. 국민에는 사용자는 물론 노동자도 포함된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헌법은 33조에서 노동자에게 다시 단결권(right to organise)을 보장한다. 많은 이들이 결사의 자유와 노동자의 단결권을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헌법은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을 구분하면서 결사의 자유는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보장되지만, 단결권은 오로지 노동자만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선언한다.

결사의 자유란 노동자가 국가나 자본가의 간섭 없이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사용자 역시 동일한 권리를 보장받는다. 국가나 노동자의 간섭 없이 자발적으로 사용자단체에 가입하거나 기존 사용자단체가 마음에 안 들면 따로 사용자단체를 설립할 자유가 있다.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는 데서 사용자와 노동자는 동등한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결사가 헌법 21조로 보장되는데도 헌법 33조에서 따로 노동자에게 단결권을 보장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문제의 해답은 우리 헌법이 33조를 통해 노동자에게만 보장하는 권리인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단결권과 통일된 것으로 이해하는 데서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삼위일체적 권리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노동 3권의 일체성과 상관성은 단결권을 ‘단체결성권’이라 풀어 쓸 때 더욱 명확해진다.

노동 3권은 모두 다 노동자가 ‘단체(collective)’가 될 때 가능한 권리다. 단체는 순우리말로 ‘떼를 지어’라는 뜻이다. 자본가의 지배와 통제를 받는 노동자는 홀로(individual)일 때 기계만도 못한 노예 대접을 받는다는 자본주의 역사의 교훈이 노동자들이 ‘떼를 지을’ 권리를 탄생시킨 배경이다. 노동자들은 떼를 지어(조직), 떼를 쓰고(교섭), 떼로 움직이고(행동) 나서야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노동자가 떼를 쓰는 것을 부정하는 자본주의와 허용하는 자본주의, 노동자가 자기 요구를 걸고 ‘떼창’을 하는 것을 부정하는 자본주의와 허용하는 자본주의를 구분 짓기 위해 민주적 자본주의라는 학술적 개념이 만들어졌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한 사회를 자본가의 독재 체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으려면, 그 출발점은 모든 노동자에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통일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정치학에서 노동 3권의 존재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구분하는 지표가 된다. 대한민국헌법은 1948년 제정 때 노동 3권에 더해 이윤균점권을 보장했으며, 경영참가권의 헌법 명시를 논의했을 만큼 사회민주적(social democratic)이었다. 또한 1919년 3·1 운동과 임시정부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그냥 공화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을 내세움으로써 대한민국이 자본가의 경제적 자유(노동자를 착취할 권리)에 맞서 노동자가 떼를 지어 저항할 자유를 동등하게 부여한 바 있다.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일류 기업으로 평가받는 네이버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진행하는데 사용자가 단체협약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안까지 거부하는 사용자의 이유가 황당한데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파업을 하지 않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 이른바 ‘협정근로자’를 노조가 인정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고 한다. 헌법에도 근거가 없고 노동법에도 근거가 없는 ‘협정근로자’를 우기는 사용자는 다른 한편으로 국제노동기구(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정한 국제노동기준(모든 노동자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누려야 한다)을 존중한다는 정신분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1964년 북한 정권은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없애고 노동자 조직인 직업동맹을 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사용자에게 협조하는 조직으로 바꿔 버렸다. 파업권에 더해 교섭권까지 박탈한 것이다. 파업권을 상실한 노동자는 사실상 교섭권이 없다. 노동조합은 껍데기만 남는다. 한국 최고의 기업 네이버가 추구하는 글로벌 기준은 고작 이런 것인가.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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