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

프랑스노총(CGT, 노동총동맹) 국제 담당자가 서울대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한참 필요했다.

국내 한 언론(한겨레)이 시설관리 노동자 파업으로 서울대 도서관 난방이 중단된 사례와 관련해 해외 유사사례를 찾기 위해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 노총에 질문을 보낸 모양이다. 홈페이지에 오른 질문을 받아 본 프랑스노총 담당자는 거꾸로 민주노총에 연락했다. “이 질문이 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민주노총 담당자는 파업 상황부터 설명했다. 반응이 미지근했다. 프랑스노총 관계자는 ‘학생을 볼모로 한다’는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챈 민주노총 담당자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한참 듣고 난 뒤에야 간신히 이해하게 됐고, 기가 막혔는지 해당 언론 질문에 대한 답변과 함께 민주노총으로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 파업에 대한 지지성명까지 보냈다.

프랑스노총 관계자가 이 내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후진국 독재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 대다수 사람에게 ‘학생을 볼모로 삼는다’는 주장은 ‘대학 노동자가 파업한다’는 행위에 연결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프랑스 에너지노조가 지난해 6월 정부 공기업 민영화 추진에 항의해 "마크롱 대통령도 에너지가 끊긴 상태로 불안한 상태에 놓여 봐야 한다"며 엘리제궁 가스공급을 끊어 버렸을 때 국가안보와 대통령을 볼모 삼은 파업이라는 대학교수 기고는 없었다. 벨기에에서는 임금협상 결렬로 전국 대중교통·공항·학교 등 공공기관 노조가 지난 13일 말 그대로 총파업을 했다. 한 달 전부터 예고한 파업이기 때문에 ‘대혼란 예상’이라 보도한 곳은 우리나라 언론뿐이고 정작 벨기에 보통 가족은 차분하게 파업에 동참하지 못한 방송국이 제작한 파업 이유 분석 보도를 시청했다.

파업권을 개인 권리로 보는 프랑스와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프랑스노총 관계자가 답한 내용은 충분히 곱씹어야 한다. 프랑스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에 보낸 성명에서 “학교 당국은 노동자 요구에 응하기보다 파업권을 억압하고자 한 것”이라며 “파업권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에 새겨져 있는 권리로,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기준이다. 한국 정부가 여전히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더라도 말이다”라고 꼬집었다.

한국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 약속만 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뒤 여태 비준하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100년 전쯤에 인정한 단결권과 파업권을 아직도 온전히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2월 국회에서 개악한 내용을 통과시키려 한다.

한국 보수세력이 헌법에서 버젓이 보장하는 파업권을 권리로 인식하지 않다 보니 노동자 파업에 공격을 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조·중·동이나 경제지 등 보수언론은 늘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를 부정하고, 나치 기관지 수준이나 다름없는 악의적인 보도를 일삼는다.

문제는 최고 지성이라 할 서울대 교수, 그 가운데서도 중앙도서관장 보직을 맡은, 독일에서 사회학 박사학위까지 딴 교수조차 “학생들의 공부와 연구를 볼모로 임금 투쟁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신문 지상에 부끄러움 없이 당당히 공언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해당 교수는 “병원 파업에서 응급실을 폐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금기이듯이, 대학 파업에서도 우리 공동체를 이끌 미래 인재들의 공부와 연구를 직접 방해하는 행위는 금기가 아닐까”라며 “도서관과 연구실의 난방마저 볼모로 임금 투쟁하는 이번 서울대 파업은 우리 사회의 이런 금기마저 짓밟는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고 비난해 노동법을 오해 또는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기고에서 언급한 응급실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필수공익사업' 가운데서도 공중의 생명·건강, 신체·안전,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대단히 제한된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하는 경우로, 파업하더라도 최소한의 유지·운영이 필요하다. 과거 정부는 이 같은 조항을 악용해 철도·전기·가스·병원 등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권을 부당하게 제한하거나 탄압했는데, 이 교수는 대담하게도 대학 도서관에 적용하는 비약을 저질렀다.

중앙도서관장으로서 도서관을 대학의 심장으로 여기는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넘어 노동자 기본 권리를 짓밟으려 하는 태도는 양식 있는 학자 자세라 할 수 없다. 교육자로서도 학생들에게 당장 눈앞 불이익에 대한 분노를 강변하는 대신, 미화노동자 노조가입을 위해 투쟁한 다른 대학 학생 사례를 소개하며 연대 가치로 지키는 공동체 장기 이익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사회학 교수가 아닌 보통 시민이라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 있다. 언론이 질문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이유다. 그러면 국민이 헌법으로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가 있을까. 파업권은 유럽 노동자만의 특권이 아니다. 이제 막 비정규직 신세를 벗어난 저임금 노동자가 행사하는 파업권에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연대는커녕 테러라도 발생한 양 겁박을 권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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