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대법원 2018. 12. 17. 선고 2017도16870 판결

우지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1. 사건의 개요 

박근혜 정부는 2014년 공공부문 방만경영 정상화라는 명목하에 공공기관들의 근로조건 및 복리후생을 일괄 축소하라는 방침을 내렸다. 공공운수노조 경북대병원분회는 병원과 사이에 임금·단체교섭이 결렬되자 2014년 11월27월부터 12월31일까지 병원 1층 로비를 점거하고 35일간 파업을 했다.

2. 쟁점 및 재판의 경과

직장점거농성은 쟁의기간 중에 노동자들이 파업 등 주된 쟁의행위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시설에서 퇴거하지 않고 장시간 체류하는 형태의 쟁의행위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점거가 금지되는 주요 업무시설이 아닌 이상 사용자 의사에 반해 직장에 체류하는 직장점거도 가능하며, 법원도 이른바 부분적·병존적 직장점거(그 점거의 범위가 직장 또는 사업장 시설의 일부분이고 사용자측의 출입이나 관리·지배를 배제하지 않는 점거)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종래 법원은 공익적 성격이 강한 사업장, 특히 병원에 대해서는 환자의 평온 등을 이유로 직장점거의 정당성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다. 단시간 파업 전야제나 업무시간 외 집회 등 일부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 사례에서 병원로비 점거는 업무방해죄로 처벌됐고 통상적인 유형의 직장점거(쟁의기간 내내 체류하는 방식)가 승인된 사례가 없었다(대법원 92도1645 판결, 대법원 2003도1317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5노2114 판결, 광주지법 2002노1736·2001고단1400 판결).

검사는 이러한 선례에 따라 노조간부들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했다. 조합원 200~300명이 한 달 이상 본관 1층 출입문을 폐쇄하고, 로비의 대부분을 확보한 후 외벽에 플래카드·벽보 등을 붙이고, 마이크와 앰프 등 음향시설을 사용해 구호를 외치고 노동가요를 제창하는 등으로 병원 원무과 수납, 입·퇴원업무, 안내센터·진료의뢰센터 업무를 방해했으므로 사실상 전면적·배타적 점거라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점거 면적, 출입문 폐쇄, 업무장애 정도, 확성기 사용 및 구호 제창, 병원의 환자나 가족의 민원제기 등을 근거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최근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판결을 확정했다.

3. 주요 변론방향 및 대상판결 의의

가. 변론방향

항소심 변론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쟁의기간 중 자신의 근무장소(기업시설)에서 사용자나 다른 노동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대체노동자 투입 금지 및 이에 대한 감시, 파업참여 호소(피케팅), 주장에 대한 의견표명을 하는 것은 ‘쟁의권의 본질적 내용’이다. 둘째, 로비는 노조법상 점거가 금지되는 주요 업무시설이 아니며, 주요 업무시설에서의 조업(환자 입원·진료 및 수술)을 보장하면서 그 밖의 사무공간인 로비 등에 체류하면서 평화적으로 진행하는 ‘부분적·병존적 직장점거’는 보장돼야 한다. 셋째, 병원 노동자들은 헌법상 노동 3권을 향유하며 노조법은 이미 공익과의 조화를 이유로 필수유지업무, 대체인력의 부분적 허용 등 여러 제한을 두고 있는 이상 공익을 이유로 법문언에 없는 이중의 제한을 가할 수 없다. 만일 이러한 주요 업무시설이 아닌 로비에서의 직장점거마저 금지된다면, 병원 노동자들로서는 사실상 근무장소에서 쟁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본질적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과 다름 없게 되고, 별도의 입법 없이 헌법상 기본권이 과잉제한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부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종래 직장점거의 정당성 판단기준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설시한 후 이에 더해 직장점거의 정당성 여부는 쟁의행위 태양과 더불어 발생 경위·시점·장소, 이로 인한 업무방해 위험성 등 전후의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쟁의행위를 보호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과 사용자의 침해이익을 비교형량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먼저 대상판결은 원심의 논거를 반박하면서 "① 병원로비를 점거가 금지되는 노조법 42조상 주요 업무시설로 볼 수 없고, 주요 진료 및 수술업무 장소 점거가 없었다. ② 경북대병원에는 총 4개의 출입구가 존재하고, 1개 출입문 폐쇄에도 불구하고 다른 출입구를 통한 출입이 가능했으며, 병원 관계자들과 환자 및 외래방문객이 이동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통로가 확보돼 있었다. ③ 점거로 인해 일부 수납창구가 폐쇄됐으나, 병원은 2층에 임시 접수창구를 만들어 폐쇄 창구업무를 계속했고 번호표 발행기·처방전 발행기 및 자동수납기 위치를 이동시켜 진료 접수·수납 등 업무가 중단되지 않았고, 병원 안내센터의 안내업무도 수행됐다. ④ 확성기 등을 사용한 구호 및 노동가요 제창 등으로 인한 소음이 발생한 시간도 오전 9시부터 30여분, 오후 1시부터 20여분, 오후 4시부터 30여분으로 비교적 길지 않았다고 설시함으로써 이 사건 점거가 부분적·병존적 점거임을 명확히 했다. ⑤ 대법원 2011. 3. 17. 선고 2007도482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에서 더 나아간 직장점거 행위에도 당연히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이전부터 병원 1층 로비에서 노조원들의 점거가 수차례 있어 왔고, 병원 자체 행사에도 1층 로비가 사용돼 온 점, 교섭이 지속적으로 결렬됐고, 조정절차도 중지됐던 점 등에 비춰 보면 병원측이 이 사건 점거를 예상할 수 있었고,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될 정도의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대상판결은 “헌법상 보장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파업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다른 사람들에게 파업의 정당성 등에 대한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제공받을 것 또한 필요로 하는 바, 노조가 경북대병원 본관 1층 로비를 병원 근로자들이 파업의 정당성 등에 대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 것은 적절한 수단”이라고 판단함으로써 근무장소에서의 쟁의권은 단체행동권의 본질적 부분임을 인정했고, 그 결과 “쟁의행위의 본질상 사용자의 정상업무가 일부 저해되는 경우가 있음은 부득이한 것으로서 노조원들에 의해 로비 일부가 점거를 당해 병원의 업무가 다소간 방해를 받고, 환자나 가족들로부터 민원이 제기됐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정도는 사용자가 이를 수인해야 할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했다.

다. 대상판결의 의의

최근 재계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영업차질 등을 이유로 사업장 내 쟁의행위 원천금지를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역사적·현실적 토대각주1와 관계법령 및 판례 취지를 몰각한 것이고, 쟁의행위의 업무저해적 속성과 그에 따른 사용자의 수인의무를 도외시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통한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다.

헌법은 기본권으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고, 노조법은 대체근로의 투입을 금지·제한하고 있으며(노조법 43조1항), 폭력적 방법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호소와 설득을 위한 피케팅도 보장돼야 하고(노조법 38조1항), 사업장의 부분적·병존적 점거 역시 쟁의행위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보조적 쟁의수단으로서 보장되며, 이 과정에서 행하는 집회 역시 쟁의권, 정당한 노조활동을 할 권리, 집회 및 표현의 자유 행사로서 사용자의 시설관리권 등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라면 보장돼야 하는 범주에 있다.

이러한 쟁의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쟁의행위로서 중단된 업무가 존재하는 그 사업장 내에서 대체근로 투입 여부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파업 비참여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그 사업장 내에서 피케팅을 할 수 있어야 하며, 파업으로 인한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바로 그 사업장에서 파업 정당성 등에 대한 의사표현 및 지지를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헌법상 기본권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한다.

대상판결은 “헌법상 보장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파업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다른 사람들에게 파업의 정당성 등에 대한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제공받을 것을 필요로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헌법상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근무지에서의 쟁의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위 판결은 문언에 충실한 해석으로 병원 노동자들의 쟁의권을 온전히 보장한 판결일 뿐만 아니라 직장점거농성의 헌법적 의의를 분명히 한 판결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각주>
1. 우리나라의 경우 ① 옛 노동조합쟁의법(1996년 12월31일 법률 5244호로 폐지되기 전의 것)하에서 오히려 사업장 내에서만 쟁의행위를 하도록 강제했고 ② 주로 기업별조직 형태를 취하는 우리나라 노조조직 유형의 특수성 ③ 노동 3권을 제한해 온 노동법의 역사와 그에 따라 일찍부터 직장점거가 이뤄져 온 선례성 등의 이유로 직장점거 형태의 쟁의행위가 많이 행해지고 있다(직장점거와 가처분, 법원실무제요 민사집행[Ⅳ] 379~3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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