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사법부의 헌정유린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하면서 밝힌 범죄혐의는 무려 47개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1일 오후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국고손실·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허위공문서작성행사·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하며 갖가지 범죄를 저질렀다. 법원의 위상 강화와 이익 도모를 위해 재판에 개입했고, 대내외적 비판세력을 탄압하고,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 상고법원 도입과 법관 재외공관 파견 같은 사법부 이익을 위해,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노동사건 재판에 개입했다. 검찰이 밝힌 대표적 사건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업무방해 사건이다. 법원행정처는 전교조 법외노조처분 효력을 정지한 서울고법 결정에 고용노동부가 재항고하자 재항고이유서를 대필했다. 대필한 재항고이유서를 받아든 청와대가 노동부에 직접 전달했다.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을 뒤집지 못하도록 청와대를 통해 압박한 정황도 확인됐다. 바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관련 사건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1년 "(노무제공 거부 파업이) 전격적으로 행해지지 않거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지 않았다면 업무방해죄가 아니다"고 판결했다. 전격적으로 파업하거나 막대한 손해를 입히면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듬해 2012년 헌법재판소는 '노무제공 거부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했다. 헌법재판소가 대법원과 다른 결론을 내지 못하도록 법원행정처는 '업무방해죄 위헌 판단 위험성'을 주제로 문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 밖에도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통합진보당 의원직 상실 관련 행정소송 재판에 개입했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법관들은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2~2017년 법원행정처 사법행정을 비판한 법관들에게 문책성 인사조치를 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비판, 세월호 참사 관련 특별법 제정 촉구, 대법관 임명제청 비판 같은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법관을 상대로 문책성 인사를 했다.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 3억5천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간부들에게 격려금을 지급했다.

검찰은 기소 사실을 밝히며 "이날 기소는 12일 구속기간 만기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 기소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사법농단에 가담한 박병대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도 함께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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