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청년노동자 김용균씨 장례를 시민사회장으로 엄수하고 있다. 검은 밤 홀로 작업하다 숨진 지 60일 만이다. 고인의 죽음은 우리 사회를 각성시켰고, 그의 어머니를 전사로 만들었다. 어머니는 정치공학에 빠진 국회를 때렸고 법·제도를 바꿨다. 그리고 죽음의 일터로 매일 출근하는 아들의 동료들이 정규직 꿈을 이루도록 했다. 시민사회가 힘을 보탰다. 정부·여당이 내놓은 ‘발전부문 근로자 처우 및 작업현장 안전강화 방안’의 의미와 과제를 들었다.

위험의 외주화 막겠다는 정신에 입각한 후속대책 필요
이태성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

이태성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

민영화·외주화로 인해 죽음의 사각지대에서 노동자들이 방치된 채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 김용균님과 유가족의 싸움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노동자들은 내 일터가 죽음의 장소라고 자각했다. 투쟁에 동참해 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드린다. 당정 발표에 따라 운전부문 비정규직들은 공공기관에 직접고용된다. 원청에 직접고용되지 못한 한계는 남아 앞으로도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우선 비정규직을 고용할 공공기관은 한전 자회사가 돼야 한다. 발전사 자회사가 되면 현재와 같은 지배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 원청이 지배·개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일터를 바꿔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한전 자회사를 설립하고 비정규직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

경상정비부문 정규직화 과정에서는 많은 난제에 부닥칠 것으로 보인다. 운전보다 경상정비가 오히려 재해율이 더 높아 안전이 취약한 곳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노동자도 적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경상정비 안전을 강화하고 고용은 3년에서 6년으로 연장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기존 민간업체들이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준 측면이 있는 대책이다. 앞으로 가동할 경상정비부문 통합 노·사·전 협의체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기본정신을 가지고 논의를 이어 가야 한다. 적어도 한전KPS나 공공기관에 직접고용하는 방식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제대로 된 노·사·전 협의체 운영이 관건
최성균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발전지부장

최성균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발전지부장

고 김용균씨 사고 소식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고인이 했던 일은 1992년 한전산업개발에 입사했을 때 내가 맡았던 업무였다. 선배로서 더 좋은 노동환경을 물려줬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니 더 나빠졌다. 내가 그 일을 했을 때만 해도 2인1조 규칙이 100% 지켜졌다. 당시는 한전 100% 출자 자회사였는데 민간에 매각됐고 경쟁입찰을 통해 민간업체들이 들어오면서 근무조건이나 안전보건 조치들이 자꾸 후퇴했다. 입사한 지 3개월 된 노동자가 야간에 혼자서 근무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인의 어머니와 유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법만 개정되면, 위험의 외주화만 막을 수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과 우리의 노동조건은 별다른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실망도 컸다.

다행히 설연휴에 당정협의로 공공기관 설립을 통한 정규직 방안이 나왔다. 경쟁입찰로 3년마다 업체가 바뀌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고용불안이 어느 정도는 해소됐다. 발전 5사 노·사·전 통합협의체 구성에도 합의했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우리는 발전회사별로 노·사·전 협의체를 꾸려 비효율적인 논의를 했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 발전회사들은 귀를 막고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라고만 했다.

이제 협의체가 구성되면 운영을 잘하는 일이 남는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안전이 우선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고 김용균씨의 뜻을 이어 가는 길이다.

변화 흐름이 발전소 밖으로 퍼져야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이번 대책은 과거 산업재해 사고 때마다 등장하던 정치적 수사를 넘어 구조적 원인 규명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구체적 시도들을 담고 있다. 그 결과는 추후 평가될 일이지만 이 같은 시도가 이뤄진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주로 발전산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사실 김용균씨의 사망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적폐의 한 단면이다. 지금 순간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김용균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구조적 모순과 적폐가 낳은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같은 위험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죽음의 행렬은 산업과 업종을 달리해 계속될 것이다. 변화의 흐름이 발전소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발전소를 넘어 전국적, 전 산업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평가와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상시·지속업무, 생명·안전업무가 분명함에도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합리하게 배제된 노동자들을 찾아내야 한다. 둘째,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내실 있게 만들어져야 한다. 셋째, 이번 대책을 통해 마련된 개선방안이 다른 산업, 다른 업종에 확대 적용되기 위해서는 근로감독관 확충을 포함한 노동안전 감독행정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정 대책, 형식적 진행 안 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9일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62일 만에 장례를 마친다. 유족과 노동·시민·사회의 투쟁으로 30년 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과 지난 5일 당정의 대책 발표가 있었다. 한계가 있는 법 개정과 정규직화 대책이지만 유족과 노동·시민·사회의 투쟁으로 이끌어 낸 변화이고, 실질적 변화의 물꼬를 튼 것임은 분명하다. 앞으로의 조사·논의·대책 도출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한 본격적인 투쟁이 오히려 요구되고 있다. 이후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까지 지속적인 투쟁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5일 발표된 대책으로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와 ‘연료·환경설비운전 분야 통합 노·사·전 협의체’ ‘경상정비 분야의 노·사·전 협의체’ 세 개의 조사 및 논의 틀이 구성된다. (가칭)발전산업 안전강화 및 고용안정 TF를 구성·운영하는 내용도 있다. 무엇보다 각각의 논의가 유기적으로 운영되면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방안이 조속히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발표된 대책에는 공공기관장에게 산재사망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발전 분야의 하도급계약에서 노동자 노무비 지급방안 개선·안전관리 역량·정규직 비율 등을 종합 평가한 종합심사 낙찰제 도입, 2월 중 적정인원 충원 완료, 4월 중 석탄발전 단지별로 노동자·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안전경영위원회 설치 등이 포함됐다. 시기가 명시된 대책들은 형식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강제하고, 그 외 대책들은 발표만 하고 표류하거나 유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대책이 발전부문과 공공부문을 넘어서 전체 노동자 안전대책으로 조속히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고 김용균씨에게 빚졌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정부와 여당이 고 김용균씨가 맡았던 연료·환경설비운전 분야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기로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와 합의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됐다는 점에서 고 김용균씨에게 빚졌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의 결과로 제도들이 변화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후속대책에 합의했지만 해결 과제는 아직 남아 있다. 최근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와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단’이 발전 분야 비정규직 인권실태를 조사한 내용을 봤다.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 고 김용균씨와 같은 일을 하던 동료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에 힘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노동자 당사자의 목소리가 묻히는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현재 가장 큰 과제라 생각한다.

또 고 김용균씨의 이름을 딴 법안(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마련됐지만 한계도 있다. 전부개정안은 보호대상을 넓혔지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에는 이 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적용예외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른바 김용균법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또 쾌적하고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해 노동자의 건강을 유지·증진한다는 법의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도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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