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끝났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둘러싼 논란은 무성했으나 아무런 조직적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내용상으로는 부결이지만 공식 의결은 생략됐다. 100만 조합원뿐 아니라 2천만 전체 노동자들을 염두에 둔 가부 결정을 기대했으나 허망하게 종료됐다. 경사노위에 들어가면 당장 뭐가 바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나, 완전히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나 과도하긴 마찬가지다. 쟁점이 될수록 더 격해졌지만 노동이 주도하는 프레임이 약하다 보니 정부와 자본의 프레임 안에 갇힌 모양새다. 사회적 대화도 최저임금처럼 과잉 논란이 되면서 실마리를 풀기 어려울 정도로 헝클어져 버렸다. 남 탓하기 딱 좋은 적대적 공조 구도가 만들어졌고 그예 이 지경이 돼 버렸다. 왜 이런 결과로 귀결됐는지 근본을 따져 봐야 할 때다.

촛불항쟁과 문재인 정부 집권 과정은 한국 사회에 중대한 변화 계기였다. 노조 조합원 대부분이 박근혜 탄핵에 동의하고 촛불시위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대해 양대 노총 정규직 노조들이 보인 태도는 아이러니했다. 전교조·인천국제공항 등에서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일부 대기업노조에서는 정규직화나 사회연대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서 민주노조의 사회적 책무는 종종 방기됐다.

민주노총이 사회대개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 탄생과 함께 적폐세력에 맞서 정부를 견제하면서 일정하게 공조하는 것이 필요했다. 특히 김명환 집행부는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겠다는 사회적 대화 공약을 중심에 걸고 당선했다. 직선을 통해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당선한 만큼 경사노위에 참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를 견인하며 친노동 흐름을 주도하는 전략이 필요했다. 이렇게 했다면 최저임금,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문제 등 민감한 현안 관련 노정갈등 요인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지도부는 자신을 당선시킨 핵심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채 때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노정관계가 악화된 2019년 1월에야 경사노위 가입을 중요쟁점으로 만들었지만 이미 뒤늦었다. 촛불항쟁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보여 준 조직력과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광장의 열기가 식은 지금 경사노위 참여 관련 민주노총이 보여 준 모습은 매우 아쉽다.

한계가 분명하고 문제도 많지만 경사노위는 사회적 비상구다. 특히 집단적 목소리가 배제된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청년, 여성, 영세 자영업자들의 이해를 그나마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대화기구다. 일종의 산소호흡기다. 더욱이 경사노위는 명칭과 성격, 운영구조 등 민주노총이 개선을 요구한 주요한 사항들이 반영된 기구이기도 하다. 당장은 돌이키기 어렵게 됐지만 사회적 대화는 여전히 필요하다. 압도적 다수의 무노조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의 이해가 대변되고 열악한 현실이 개선될 수 있도록 의제 설정과 공론화의 장 기능을 할 수 있는 건 경사노위 외에 달리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역주행과 오락가락 행보가 사회적 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전체 노동자들의 권익 개선에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도 있는 경사노위를 섣불리 부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경사노위가 제 몫을 하려면 우선 책임이 무거운 정부부터 탄력근로제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등 일방적으로 강행한 노동개악을 중단해야 한다. 청년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씨가 부모님의 염원대로 설 전에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고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이행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 특단의 결단을 해야 한다. 불신을 부추긴 정부의 신뢰회복 노력 없이는 사회적 대화도 어렵다. 양대 노총을 비롯한 조직노동도 무권리 상태에 놓인 대다수 노동자들의 권익을 중심에 두고 주도적으로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책에 개입하고 참여해야 한다. 잘못된 정부정책으로 가장 막심한 피해를 입을 노조 밖 노동자들의 권익 보장과 삶의 질 개선을 진정 원한다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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