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진실법, 장그래법, 태완이법….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법들이 있다. 길고 복잡하거나 익숙지 않은 법안 명칭을 쓰고 어려운 법 취지를 공문서로 밝히는 것보다 이름으로 대표되는 서사를 국민이 공감하는 경우 법의 취지가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처럼 제안자 이름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법이나 제도 미비로 인해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사람의 이름을 넣는 경우가 많다.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제·개정된 법·제도를 통해서 보호받고 안전한 삶을 영위하고 다시는 ‘제2의 누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겠다.

김용균법이라고 불렀다.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음에도 다들 그렇게 불렀다. 지난해 말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업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청년노동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의 죽음에는 원·하청 문제, 위험의 외주화, 청년 취업난과 결부된 제대로 된 일자리(decent work)의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착하고 성실했던 외동아들의 죽음에 각성한 어머니는 위험한 일터에서 아슬아슬한 노동을 이어 가는 모든 노동자들의 부모 마음을 대변하기로 했다. 아들의 죽음과 어머니의 애씀으로 잠들어 있었고 외면당하고 있었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통과 여부가 연말 정국에 주요한 뉴스거리가 됐고 여론을 움직였으며 우여곡절을 거쳐 통과됐다.

이제 할 일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제2의 김용균’이 생기지 않도록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김용균이 살아서 일하고 있었더라도 개정된 ‘김용균법’이 그를 위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다. 물론 28년 만에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많은 진전이 있었다. 하위 법령인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 그리고 많은 고용노동부 고시들도 모법 개정에 따라 개정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법조문 하나, 단어 하나가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서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차별적 예외는 줄이되, 배려는 높아져야 한다. 법·제도의 안정을 흔드는 것은 정의가 분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입법 취지에 맞게 적용하고 해석하지 않는 것에 있다. 반드시 후속작업에 여론의 관심이 지속돼야 한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이 대폭 강화됐다. 개정 전 산업안전보건법 28조에 따라 도급이 금지됐던 유해작업은 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으면 도급이 가능했지만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원천적으로 도급이 ‘금지’됐다(산업안전보건법 58조). 하지만 이렇게 도급이 금지된 작업은 유해물질 중심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제시됐으며 노동자 김용균의 업무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59조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안전 및 보건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으로 정해 도급시에 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애초 정부가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59조1항은 “사업주는 안전과 보건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은 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같은 사업장 내에서 도급할 수 없다”로 돼 있었지만 국회 심의를 거치면서 “사업주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안전 및 보건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 중 급성 독성, 피부 부식성 등이 있는 물질의 취급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을 도급하려는 경우에는 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로 적용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줄여 버리고 말았다. 마치 특정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업무에만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말았다. 더 들여다보면 도급을 주기 위해서는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돼 있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대상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취급하는 물질이 아니라 죽음을 무릅쓴 석탄발전소 낙탄 제거와 같이 업무 자체의 위험 여부에 따라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어떤 의도로 넣었을지 뻔히 짐작되는 “급성 독성, 피부 부식성 ‘등’이 있는 물질의 취급 ‘등’”은 하나의 예시로만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원·하청 간의 왜곡된 도급구조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가 현실이라면, 구분해 차별할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법적 보호 대상으로 둬야 한다. 기업의 풍토와 사회의 수준이 성장해 원·하청 간 안전보전 관리수준의 격차가 줄어들게 되면 자연히 다시 하위 법·제도를 손보면 될 일이다.

김용균으로 인해 통과돼서가 아니라 수많은 ‘김용균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법이라야 마땅히 그 이름을 붙여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