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 노동자와 직접 만나 달라고 호소했던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씨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은 지 50일이 지났다. 시신은 아직 차가운 냉동고에 있다. 김용균씨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의 씨앗이 됐지만 그의 죽음은 진상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동료들은 지금도 발전소 하청회사 직원으로 위험작업을 하고 있다. 유가족과 노동계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발전소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정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가 산업안전 전문가와 발전 비정규직 당사자 얘기를 보내왔다.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발전소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24세의 꽃 같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김용균의 49재가 지났다. 설이 되기 전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어머님과 유족의 작은 소망도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광화문 농성장에서 단식이 시작된 지도 벌써 9일째다. 그러나 정부는 말이 없다. 동료들은 비정규직 딱지를 떼지 못한 채 ‘두렵다’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말할 수 없는 황망한 상태다.

김용균 사고사망의 데자뷔 같은 일이 2016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발생했다. 당시 19세였던 구의역 김군은 발전소의 김용균이었다. 구의역에서 일하던 김군 역시 하청회사 소속 노동자였고 스크린도어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2인1조가 원칙이었지만 인력이 없어 혼자 일할 수밖에 없었고 일을 하는 동안 진입하는 열차를 볼 수 없어 열차에 접촉해 사망했다. 그가 정규직이었다면 관제센터에서 진입열차 기관사에게 주의운전을 당부했을 것이다. 2인1조 작업으로 동료가 진입열차를 감시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구의역 사고는 이미 성수역과 강남역에서 2명의 사망자를 낸 후에 또 벌어진 사건이었기 때문에 시민의 분노는 들끓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규직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당시 5~8호선 구간에서는 사망사고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같은 업무도 정규직이 하면 사고가 나지 않지만 비정규직이 하면 사고가 난다는 의미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화·하청화·외주화는 위험을 생산해 내는 행위 그 자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교통공사에는 구의역 김군과 같은 사람은 더 이상 없다. 서울시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용균의 동료들은 또 다른 김용균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아직도 ‘사람 잡아먹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2010~2018년까지 서부발전에서 사망한 노동자 13명은 전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이런 결과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전력 분야에 나타난 민영화와 경쟁도입이라는 두 가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2002년 발전회사들은 한국전력공사에서 떨어져 나와 민영화를 앞두고 있었다. 2003년 연료환경설비 운전을 전담해 오던 한전산업개발이 민영화(자유총연맹이 지분 51% 매입)되기에 이르렀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와서는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통해 한전KPS의 지분매각을 진행했다. 2016년 기획재정부는 한전KPS가 발전정비시장을 과점하고 신규 화력발전기에 대한 정비를 독점하는 것에 대해 민간기업을 참여시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9개 경쟁업체 구조로 재편을 이루게 됐다. 이들 기업의 임원진이 한국전력공사 출신, 발전회사 출신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부발전이 한국발전기술과 맺은 도급계약(2015년 7월~2018년 12월) 용역비 산출단가 비중이 기가 막힌다. 노무비 90.1%, 안전관리비는 1.5%, 연구개발비 0.5%, 이윤 1%다. 정부는 민영화 목적으로 발전소 운영·정비업체 육성을 내걸었지만 실상 해당 업체는 ‘인력파견업체’에 불과할 뿐이다.

독점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한전KPS는 날벼락처럼 정비시장이 열려 이제는 시장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민간부문 정비업체들의 기술부족을 메꾸기 위해 연간 수십 회씩 지원을 나가는 실정이다. 난립하는 민간부문 정비업체 노동자들은 기술력도, 안전한 설비도, 안정적 고용도, 용역설계상 임금도 확보하지 못한 채 경쟁에 내몰린 상황이고 기존 한국전력 자회사로 현장을 지켜 왔던 한전KPS 같은 역량 있는 조직의 노동자들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도대체 경쟁을 통한 기술력 향상이란 이데올로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구조로 계속 이어진다면 제2의 김용균은 반드시 발생하고 말 것이다. 이제 이 너저분한 하청구조를 바꾸고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일할 때가 왔다. 그래야 더 이상 죽지 않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