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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역사박물관, 노동자의 힘으로 ②] 짜장면과 박물관, 그리고 노동자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한국 최초 노동역사박물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노동역사박물관은 경기도 고양시에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현재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부운동을 펼치고 있다. 기부운동은 노동운동 기록을 보전·전산화하고 노동조합사와 투쟁백서를 편찬하는 ㈔노동자역사 한내가 중심이 돼 이끌고 있다.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이 노동역사박물관을 설립해야 하는 이유와 노동자 참여를 요청하는 글을 보내왔다.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짜장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짜장면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음식점이 2만4천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통계마다 차이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하루에 150만~700만개 짜장면이 팔려 나갑니다. 이쯤 되면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던 시구가 생각날 정도입니다. 8명 중 1명이 짜장면을 먹는 셈이니 8할까지는 아니더라도 1할가량은 되겠지요.

이사 날·입학식·졸업식마다 먹던 짜장면은 한국 근대적 노동자의 음식입니다. 1880년대부터 산둥반도에서 들어온 중국 건설노동자들, 이른바 쿨리라 불리던 이들이 즐겨 먹던 작장면(炸醬面)에서 유래됐습니다. 또 모두가 가난하고 바쁘던 시절, 젓가락으로 휘휘 비벼 후루룩 입안에 욱여넣던 ‘얼리 패스트푸드’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에게 어떤 노스탤지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죠.

짜장면박물관

인천에는 짜장면박물관이 있습니다. 산둥성에서 이주한 노동자와 상인들의 ‘센터’ 역할을 했던 산동회관 자리가 그것입니다. 산동회관의 문을 연 우희광(1886~1949) 선생은 신해혁명으로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수립되자 ‘공화국의 봄’이라는 뜻의 공화춘(共和春)으로 상호를 변경합니다. 최초 ‘중국집’으로 알려져 있는 공화춘의 탄생에 해시태그를 단다면 ‘#짜장면 #혁명 #노동자 #공화국의 봄’쯤 되지 않을까요. 이처럼 짜장면에는 진보주의의 향취가 물씬 풍깁니다.

그 공화춘 자리에 세운 짜장면박물관. 이 나라에 들어와 있는 화교들이 짜장면박물관에 가서 단순히 짜장면 역사를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화교의 뿌리를 발견하고 역사와 정체성을 기억하는 곳입니다.

여러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인천 개항장 인근 답삿길에서 짜장면박물관을 들렀을 때 한 참석자가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짜장면박물관도 있는데 노동박물관은 왜 없나요?”

노동박물관!

한국에도 언젠가부터 이색 박물관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급증한 ‘개인 박물관’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죠. 박물관협회에 등록한 박물관이든 아니든 점점 많아졌고 또 한때는 이 박물관들이 제주로 이전하기도 했죠.

늘어난 박물관 숫자만큼 사람들의 발걸음도 이어졌습니다. 예전엔 박물관은 학교에서 견학이나 가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박물관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운용합니다. 점차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손잡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박물관들이 너무 많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관람객 하나 없는 박물관을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공약사업으로 만들어 댑니다. 말 그대로 비온 뒤 죽순 올라오듯이 말이죠.

그런데 그 우후죽순에도 끼지 못하는 노동박물관. 진짜 왜 노동박물관은 없는 걸까요? 짜장면박물관이 있는 인천만 해도 그렇습니다. 개항 시절뿐만 아니라 70~80년대 동일방직, 대우자동차 투쟁처럼 노동운동사에서 한 획을 긋는 사업장 투쟁이 있기도 했고 또 86년 5·3인천항쟁처럼 노동자가 주도한 반독재 민주화투쟁도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조차 노동박물관은 없고 서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지자체들 중에 노동박물관을 만드는 곳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취지와 선의를 갖고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노동자 역사를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소문에 들려오는 지자체들의 노동박물관은 말만 노동박물관이지 ‘산업박물관’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산업도시마다 제대로 된 산업정책이 없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 돌파구로 지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노동자 스스로 노동박물관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박물관은 죽은 역사를 한데 모아 놓은 공간이 아닙니다. 노동박물관은 노동자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며 또 공유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노동자 자존심의 근거지입니다. 역사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마당으로 기능할 것입니다. 노동자역사 한내는 그 같은 노동박물관 건립의 한 걸음을 떼고자 합니다.

양돌규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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