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KB국민은행 노사가 파업에 이른 갈등을 겪은 끝에 페이밴드(호봉상한제)를 포함한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선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양측 논의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양측은 ‘인사제도 TFT’를 꾸려 5년 안에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양측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 만큼 절충점을 찾는 과정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노조는 기존 시행계획이 다른 시중은행보다 노동자 임금을 제약하는 정도가 큰 만큼 제도의 완전 폐지를 주장하고, 은행은 다른 시중은행이 시행 중인 제도인 만큼 적용범위를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향후 교섭에서 시중은행 사례가 주요 고려사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8일 <매일노동뉴스>가 시중은행 페이밴드 운영현황을 살펴봤다.

"페이밴드는 노조 동의 없이 도입한 악랄한 제도"

KB국민은행은 2014년 11월 이후 신규입사자부터 일정 기간 안에 승진하지 못하면 기본급이 동결되는 페이밴드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 직원은 승진과 관계없이 3년마다 자동으로 1등급이 상향되고, 이에 맞춰 기본급이 올라가는 호봉제를 적용받는다.

회사가 운영하는 제도는 L0(1~5등급) 신규입사자가 자동 호봉상승 기한이 만료되는 12년 후 L1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기본급이 동결되는 구조다. 기간은 위 단계로 올라갈수록 짧아진다. L1 7등급으로 승격하더라도 6년 이내에 L2 9등급으로 승격하지 못하면 다시 기본급이 동결된다.

다른 시중은행도 KB국민은행과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긴 하다. 우리은행은 차장급에 한해 호봉상한제를 적용한다.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 관계자는 “대졸 군필 신입행원이 8년 정도 일하면 과장을 달고 이후 6년 정도가 경과하면 차장을 다는데 이후 기본등급 상한제가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직급별로 12년 상한제를 운영한다. 노조 신한은행지부 관계자는 "상한기간을 늘려 달라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있다"고 전했다. 정덕봉 노조 부위원장은 “과거 KB국민은행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신입행원 복지축소 요구에 맞춰 신입행원 임금체계를 일방적으로 개악했는데, 그게 바로 페이밴드”라며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노조와 합의 없이 도입한 제도라서 상한 도달기간이 짧고, 직원들을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가 없는 악랄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노사 합의로 전문가가 포함된 TFT를 운영해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선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새로운 논의를 이어 갈 예정이어서 기존 제도를 평가하는 것은 현시점에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연공 보상, 책임자 성장 유도 접점 찾아야"

옛 하나은행은 상한등급 도달기간이 20여년 걸리는 호봉상한제를 운영했다. 옛 외한은행은 해당 기간이 25년가량이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친 KEB하나은행 노사는 최근 통합 4년 만에 인사·급여·복지제도를 일원화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 KEB하나은행지부는 일부 직급 간 페이밴드 상한선과 하한선이 겹치고, 호봉상한제를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했다.

KEB하나은행 직급은 행원B·행원A·책임자·관리자 순서로 높아진다. 행원B의 임금 상한선은 6천200만원, 행원A 하한선은 5천100만원이다. 일정 기간 안에 승진하지 못하더라도 임금인상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실제 KEB하나은행 직급별 호봉상한 기간은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월등히 길다. 행원B는 35년, 행원A는 18년, 책임자는 19년, 관리자는 15년이다.

최영애 지부 부위원장은 “옛 하나은행은 모든 직급에서 아래의 임금 상한선과 위의 하한선이 분리돼 있었고, 옛 외환은행은 모든 직급에서 겹쳤는데 둘을 혼합해 통합제도를 만든 것”이라며 “승진을 못해 기본급이 동결된 조합원을 위해 직급별 호봉상한 기간을 늘리 것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아래 직급이 회사에 오래 있었다고 상위 직급보다 급여가 많은 것은 사실 은행이라는 조직 입장에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며 “입사 후 일정 기간 연공을 감안해 임금인상을 보장하고 이후 책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은행 노사가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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