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시민·사회 원로들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고 김용균씨 빈소 앞에서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원로들은 진상규명위원회 구성과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정부에 촉구했다. <정기훈 기자>
"저도 용균이처럼 낙탄을 손으로 집다가 헬멧이 (컨베이어)벨트에 닿은 적이 있어요. 운 좋게 헬멧이 벗겨져서 그랬지 아니면 저도 휩쓸려 갔겠죠. 안전망이나 펜스를 설치해 달라고 했는데 안 해 줘요."

"석탄을 이송하는 기계에 이상이 있어서 확인하러 갔다가 옷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 상태로 30분을 버티고 있다가 누군가 제 소리를 듣고 기계를 멈췄어요. 그 사고로 어깨가 나갔어요."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단이 진행한 면접조사에 참여한 하청노동자들의 증언이다. 고 김용균씨와 같은 공간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다.

하청노동자들 "개선 요구해도 원청이 안 들어줘"

인권실태조사단과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24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현장 노동자 증언을 토대로 발전소 하청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는 원인을 진단했다.

정부 정책에 의해 한국전력은 2002년 5개 발전회사와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분할됐다. 이 과정에서 발전소 업무를 핵심사업과 비핵심사업으로 구분했다. 발전소 정비와 운전업무는 사내하도급 형태로 외주화했다. 그때 고 김용균씨가 일했던 연료 운전업무도 민영화됐다.

고 김용균씨가 속했던 한국발전기술은 석탄을 적절한 크기로 부숴 보일러까지 보내는 과정을 담당하는 회사다. 석탄을 보관한 곳에서 보일러까지는 컨베이어벨트로 이어진다. 공정 곳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노동자들은 일반건물 9~10층 높이로 쌓여 있는 석탄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추락위험에 노출되고, 탄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 중독위험에 놓여 있다. 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 끼이는 사고가 발생하고,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낙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벨트 사이에 몸 일부가 끼이기도 한다. 고 김용균씨는 기본교육을 고작 3일 받고 이 업무에 투입됐다.

현장의 위험은 노동자들이 가장 잘 안다. 조사단 면접에서 노동자들은 "위험을 개선하기 위해 건의를 해도 원청은 들어주지 않고, 막상 위험에 닥쳐도 원청의 지시 없이는 안전조치를 곧바로 취할 수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한 노동자는 면담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사고가 났다 하면 작업을 중지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에 풀코드(긴급정지장치)를 당겨야 하는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풀코드를 당겨도 되는지 원청에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제대로 못하면 사유서를 써야 돼요."

사회 원로들 "진상규명위 설치" 촉구

노동자들은 위험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지키고 있을까. 개선요구서를 작성해 회사에 제출하거나, 작업팀원들은 부족한 설비나 인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협업을 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대용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현장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지만 태안 화력발전소에는 비정규직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창구가 없다"며 "원청과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소통은 단절되고 노동자는 업무 지식과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혜진 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외주화로 인해 노동자의 시설개선 요구가 묵살되고 현장소통이 막히면서 발전소가 위험한 일터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조사로 확인됐다"며 "정부는 외주화를 중단하고 정규직화하는 것이 안전을 위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사보고서는 인권단체 활동가 10명이 지난해 12월27~28일 이틀간 한국서부발전 정규직·비정규직 등 노동자 48명과 진행한 심층면접조사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고 김용균씨의 모친 김미숙씨와 고인과 같이 일한 동료들이 발표를 지켜봤다.

한편 노동·시민·사회 원로들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고 김용균씨 빈소 앞에서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위원회 구성과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정부에 촉구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권영길·단병호 전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시국선언에는 182명이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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