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지난 19일 광화문광장에서 ‘태안화력 청년 비정규 노동자 고 김용균 투쟁승리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은 정부·유족·시민대책위원회의 공동 진상조사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구조적 대책을 마련하자고 촉구했다. 발전소 비정규직을 발전 5사가 직접고용하는 등 민간과 공공영역의 상시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위험의 외주화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김용균씨 사고 이후 지난해 12월27일 정부 관계자조차 통과될 리 없다고 생각한 산업안전보건법(이른바 김용균법)이 28년 만에 전부개정됐다. 이것은 전적으로 김용균씨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유가족의 굽힘 없는 투쟁으로 인한 것이다.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의 의의는 적용 대상을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한 점,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한 점, 도금작업과 수은·납·카드뮴 관련 작업 등 유해·위험한 작업의 도급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지한 점에 있다.

그러나 도급인이 안전보건 조치를 책임져야 하는 범위가 정부안보다 축소됐고,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에 대한 처벌 수위,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하게 한 자에 대한 처벌수위는 재범에 대해 가중처벌 조항을 두기는 했으나 정부안보다 후퇴했다.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하한형 규정을 도입하고, 도급금지 범위를 정부안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노동·시민·사회단체 주장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통과된 법안에 따른다면 한국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업무,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노동자 김군의 업무는 도급금지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위와 같은 방향으로 계속 개정돼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외주화·간접고용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상 위험은 계속 외주화될 수밖에 없다. 외주화 자체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고, 자본은 끊임없는 비용절감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간접고용은 1998년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제정된 이후부터 합법화됐다. 그 후 20년이 지나면서 한국 사회에서 간접고용을 포함한 ‘비정규직’은 하나의 신분이 됐고, 고용은 불안하고 임금은 적은 비정규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청년들은 공무원시험으로 내몰린 지 오래다. 그러나 이제 비정규직의 노동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넘어서 그 자체로 ‘위험한 노동, 죽음이 가까이 있는 노동’이 돼 버렸다.

파견법의 핵심은 ‘고용과 사용의 분리’다. 이는 근본적으로 ‘이익’을 가져가는 사용자가 ‘책임’은 서로에게 전가하는 제도다. 노동자는 본질적으로 일대일로는 사용자를 상대로 대등하게 협상할 수 없으므로 노동조합을 통해 싸운다.

그러나 파견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어느 사용자를 상대로 싸울지조차 애매하다. 실질적으로 협상 상대인 사용사업주는 직접고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전가하고, 고용사업주는 협상에 응할 경제력이나 힘이 없다. 고 김용균씨 사고가 발생한 한국서부발전, 구의역 김군이 사망한 서울메트로도 그러했다. 이는 어느 특정한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과 사용의 분리를 합법화한 현재 파견법하에서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권한과 책임, 권리와 의무가 동반해야 한다는 것은 근대사회의 상식이다. 그러나 현재 파견법하의 대한민국은 이익만을 취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 자본의 존재를 합법화한 사회, 노동에서는 전근대적인 사회가 됐다. 이러한 대한민국 노동 현실을 직시해 결국 죽음까지 외주화한 파견법을 폐지해야 김용균씨와 같은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이 줄어들 것이다. “정규직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 살게만 해 달라”는 하청노동자의 절규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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