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스물네 살 비정규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죽음의 원인을 보여 주는 ‘위험의 외주화’는 현실을 과연 잘 드러내는 단어일까? 최근 6년간 3명 이상 사망한 작업장의 재해발생 현황을 보면 사망자 중 하청노동자 비율이 85%였다. 조선·철강·자동차·석유화학·전자 5개 업종의 1만명당 사망사고율은 하청노동자가 원청보다 11배나 높았다. ‘위험의 외주화’는 위험을 하청에게 떠넘겼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하청노동자가 죽어 가는 현실을 위험이 단지 ‘이전’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외주화를 하면 위험은 ‘증폭’되는 것이다.

몇몇 언론은 “위험의 외주화가 아니라 전문가에게 맡겨 안전을 전문화하려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고 해서 위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노동현장을 안전하게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왜 외주화된 현장에서는 안전설비가 개선되지 않는지, 외주업체들이 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는지, 왜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근속연수는 짧은지도 답하지 못한다. 외주화는 원청에 권리는 무한정 주되, 책임은 면제하는 구조라는 사실에 눈감기 때문이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의 소속회사는 한국발전기술이지만 모든 설비는 원청인 서부발전 소유다. 석탄을 저장하고 운반하는 것은 화력발전소 고유 업무이기 때문이다. 작업자 안전을 위해 설비를 개선하려고 할 때 하청업체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원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원청은 설비가 멈추지 않는 한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 비용을 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설비조차 소유하지 못하고 개선 권한도 없는 종속적인 하청업체가 어떻게 안전에 대해 전문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위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던 김용균과 그의 동료들은 여러 차례 설비 개선을 요구하고 개선방안도 제안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말이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청의 말단에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원청의 도급단가에 의존하는 하청업체에서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위험한 노동에 시달렸고 여기에서 미래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보니 숙련된 사람이 적고, 교육도 안정적으로 할 수 없었다. 하청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처지가 위험을 더 크게 만들었다.

외주화는 안전의 소통체계를 단절시킨다. 구의역 김군이 안전하게 작업을 하기 위해 열차를 멈추려면 9단계를 거쳐야 했다. 2016년 경북 김천 KTX 선로에서 작업 중 하청노동자가 숨진 사고는 KTX 지연과 선로변경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송역에서 열차가 멈춰서 승객들이 혼란을 겪었을 때 그것을 수습해야 하는 승무원들에게 사고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도 그들이 코레일관광개발이라는 자회사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외주화는 소통체계를 단절시키고 이것이 위험을 증폭한다.

외주화는 사고가 나도 개선하지 못하게 만든다. 태안 화력발전소는 지난 8년간 하청노동자 12명이 사망했지만 무재해 인증을 받고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았다. 권한이 있는 자가 처벌받지 않으니 현장은 개선되지 않는다. 구의역에서도 김군 사망 이전에 동일한 사망사고가 두 번이나 있었으나 모두 ‘작업자 과실’로 처리됐고 하청업체만 벌금을 물었다. 사람이 죽어도 시설개선보다는 비용이 덜 들어가니,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목숨 값을 가볍게 만든 정부와 국회가 그래서 이 죽음의 공범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28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도급 금지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강화했다고 했다. 그러나 도급금지는 유해업무의 일부만 해당할 뿐이고 정작 위험업무를 했던 태안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원청의 책임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처벌의 하한이 없어 솜방망이 처벌이 지속될 것이다. 여전히 원청 입장에서는 벌금을 내는 것이 노동자가 죽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고 여길 것이다. 이 정도로는 죽음의 외주화를 멈출 수는 없다.

김용균의 죽음으로 드러난 공기업 발전소의 작업환경은 정말 끔직했다.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했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겠지만 몇 차례 도급계약을 거치고 나면 또 지금의 상태가 될 것이다. 정말로 위험을 멈추려면 죽음의 외주화를 중단하고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한다. 그때서야 소통이 시작된다. 제대로 된 교육이 시작된다. 인력충원 가능성이 생긴다. 노동자들의 개선 요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바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안전을 위한 목소리가 힘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