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1월15일 대부분 매체 헤드라인을 장식한 뉴스는 아마도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일 듯하다. 대통령이 대기업·중견기업인 13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했다. 대통령이 기업인들에게 투자와 일자리 만들기를 부탁하면서 요구사항을 들었다고 한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이들의 모습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누구든 각자 생각을 전하고 그 차이를 좁혀 간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뉴스를 보면서 뭔지 모를 허전함이 계속된다.

‘노동자들도 같은 방식으로 초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역대 여느 대통령에 못지않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정한다. ‘노동존중 사회’를 기치로 당선됐고, 이후 이미 여러 번 공식적으로 노동자들을 초대하지 않았던가. 양대 노총 위원장과의 대화도 이어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첫 고용노동부 장관에 노동계 출신인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임명하고, 무엇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문성현 위원장에게 그 책임을 맡긴 것만 보더라도 대통령의 노동에 대한 애정을 알 만하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문제과 탄력적 근로시간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았고, 실업의 그늘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지금 노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날 대화를 보고 “오히려 기업인을 부를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물어야 하지 않나요” 하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일자리가 기업 투자와 정부 규제개혁만으로 될 일인가요”라며 거드는 이도 있다. 마치 5년마다 되풀이되는 데자뷔라 할까. 어느 정권이든, 시기가 문제일 뿐 출범 이후 적당한 때 기업인들에게 투자를 청한다. 그리고 규제개혁을 약속한다.

그러나 기업이 내놓은 약속대로 그 이행 결과가 분명하게 밝혀진 예는 많지 않다. 그 많은 투자와 일자리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번에도 “3년간 4만명 고용 약속은 꼭 지키겠다”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발언을 경제신문들은 앞다퉈 보도했다. 이에 대해 “4만명 약속은 그저 삼성이 매년 채용하는 인원에 일부 더하는 수준일 뿐 새로운 게 아니다. 예전에도 정부 초기 했던 같은 약속”이라며 이 부회장 발언을 일갈하는 평론도 보인다. 아예 자신의 형사사건 무마를 위한 포장일 뿐이라 의심하는 이도 적지 않다.

만약 삼성이 이전 정부에서 했던 부정한 방식의 경영, 즉 정부에 뇌물을 주거나 산업재해까지 은폐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이익 쌓기에만 골몰하지 않았다면, 그 대신 건전한 투자와 양질의 인간다운 일자리 만들기에 좀 더 힘썼다면 어땠을까. 이와 같은 약속은 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작게는 삼성제품을 사용한 소비자를 위한 기업의 책임이기도 하다.

대화에 참여한 기업인들이 내놓은 건의에 대한 답변에도 문제가 있다. 다른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노동문제’만 놓고 보자. “최저임금의 지역·업종별 차등적용이 필요하다”는 질문에 노동부 장관은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정책을 보완하겠다”고 답한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규제개혁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그저 의례적일 수는 있어도 장관의 “지역·업종 차등은 불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의견인지,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노동부 장관으로서는 오히려 노동제도는 ‘규제개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 ‘노동과 환경’은 경영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이지 어찌 규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번엔 정말 다를 줄 알았는데 같은 방식이네’ 하는 안타까움이 인다. 기업인과 대화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크다. 결국 따지고 보면 취임 일성인 일자리 문제를 잘 풀어 보기 위해 이번 기업인과의 대화를 기획한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일자리, 그것도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좋은 일자리가 어디 기업의 투자만으로 가능한 것인가. 투자가 자산에만 몰린다면, 만들어진 일자리가 규제개혁과 무관하다면 그 결과는? 정작 일자리 당사자인 노동자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다음번 청와대 초청간담회에는 기업인뿐만 아니라 그 상대방인 노동자들도 함께라면 좋겠다. 어떤 갈등은 토론 끝에 대통령의 조정으로 해소되는 모습도 좋으리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를 청와대에서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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