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기득권 노조가 자기네 임금만 올려 격차가 이렇게 심해지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이었다면 1980년대로 돌아가더라도 노동운동을 하지 않겠다.” 폐암 수술을 받고 돌아온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0일 동아일보와의 신년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신문은 이를 제목으로 크게 뽑아 놓았다. 사실 나도 18일 한 학회에서 발표할 ‘국제노동기준과 노조전임자’에 관한 발제문을 작성하다가 기사 제목에 낚여 인터뷰 내용을 읽게 됐다. 분명히 신문사는 문성현 위원장이 한 말 중 가장 구미에 당기는 말을 골라 이렇게 제목으로 달았을 것이다. 기자는 “정규직 노조가 기득권을 버려야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친절히 해설까지 해 놓았다. “탄력근로제는 예외적으로 허용하되 하루 최대 근로시간을 제한하거나 초과근로에 대한 금전적 보상안을 마련하면” 되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과 관련해 경영계가 요구하는 △단체협약 유효기간(현행 2년) 확대 △파업 중 직장 점거 금지는 노동계가 수용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빅딜’로 대타협이 가능하다”며, 경사노위에서 경영계와 노동계가 합의할 수 있다고 문성현은 말하고 있었다.

2. 문성현 위원장은 “‘기-승-전-격차해소’를 모토로 뛰겠다”며 이같이 말했다지만, 이 같은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그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도 이러한 인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 정부부처 장관과 총리, 심지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오늘은 바야흐로 그 같은 모토로 노동정책이 집행되고 있다. 사실 격차해소를 모토로 내걸었던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도 다르지 않았다. 툭하면 대기업 정규직 기득권 노조라 비난해 대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의 당까지 살필 필요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이 같은 취지로 최저임금법 등 노동 입법을 추진해 왔던 것이니, 오늘은 바야흐로 격차해소를 위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니 오나가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문제라고 하고, 이러나저러나 그 노조가 비난 대상이다. 최저임금 인상, 통상임금, 노동시간단축…. 각종 노동정책 추진이나 이러저런 노동현안이 불거지면 대기업 정규직 기득권이 문제의 근원이라 하고 ‘기-승-전-격차해소’다. 이런 세상이니 대기업 정규직 기득권이 문제라는 취지로 제도개선을 위한 입법을 추진한다면 야당의 반대 없이, 오히려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로 원만히 표결로 처리된다. 어쩌다 이 지경의 세상, 문성현 위원장이 민주노조운동에 대해서 80년대로 돌아가더라도 노동운동을 하지 않겠다며 비난하는 세상이란 말인가. “기득권 노조가 자기네 임금만 올려 격차가 이렇게 심해졌다”는 것이 비난의 이유였다. “자기네 임금만 올리지” 않고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위해 노조운동을 했더라면 적어도 과거의 동지였던 문 위원장으로부터는 비난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수많은 원인이 있고, 그 이상의 변명이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노조라고 할 말이 없을 리 없다. 임금협상이 사업장별로 이뤄지는 교섭구조고, 그러니 임금인상 수준은 사용자의 지급능력에 따라 결정되며, 사용자의 몫으로 돌아갈 것을 교섭과 투쟁을 통해 임금인상으로 쟁취해 내는 것은 노조의 일이라고 어쩌면 뻔하게 들리는 말부터 하게 될 것이다. 수도 없이 했던 말이다. 그래서 뻔뻔하게 들릴 정도가 돼 버린 말이기도 하다. 자본에 맞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하는 노동운동이라면 이 정도 구조는 충분히 넘어서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그러지 않은 것이니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한때 노동운동을 했거나 그에 우호적이었던 ‘기-승-전-격차해소’를 모토로 하는 이들은 그러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에는 정말 아픈 말이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의 한계 내지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으로서는 변명하면 할수록 자신의 못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춰 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변명은 내 몫으로 여기고 쓰겠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읽고서 나는 이 칼럼의 제목을 달았다.

3. 기득권 노조라고 대표적으로 들고 있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자기네 임금만 올리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인상까지 하려고 투쟁한다면 어떻게 될까. 파업을 결의할 때부터 귀족노조가 불법파업을 한다고 야단일 것이다. 그래도 이를 무시하고 파업에 돌입하고자 하면? 사용자 현대차는 현대차지부가 합의해 줄 정도의 임금인상안을 던질 수도 있고, 그래도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며 노조는 다른 사업장 사용자가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현대차에서 파업투쟁을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이에 대해 ‘그렇다’고 용감하게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감히 문성현 위원장처럼 현대차지부를 기득권 노조라고 대놓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도 나는 뭐라 할 수는 없다. 단지 다른 사업장 사용자를 굴복시키는 정도로 현대차에서 파업투쟁을 전개한다면 이 나라의 법은 현대차지부와 노조간부 등은 수백 억원의 손해배상과 해고 등 징계, 업무방해 등 형사처벌을 받게 할 것이고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노조는 존립이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말은 해 주고 싶다. 고작해야 다른 사업장 조합원의 임금인상에 관해서가 이러하니, 정리해고·기업구조조정 등의 투쟁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나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노동법 개정투쟁은 더더욱 그러하다.

문성현 위원장이 금속산업연맹 위원장이던 시기에 연맹의 가장 주된 조직사업은 산별노조체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당시 심상정 사무차장 등을 비롯한 연맹의 사무처 간부들은 연맹의 방침에 따라 그 전환의 당위성을 선전하고 교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산별노조가 되면 개별 사업장을 넘어 산업구조조정 등 노동정책, 노동법 개정에 공동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며 기업별노조가 할 수 없는 투쟁을 할 수 있다고 연맹 소식지에 선전하고 조합원을 상대로 교육했다. 물론 대기업과 중소·영세 사업장 간의 임금 등의 격차도 산별교섭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2001년 2월 금속노조를 설립했고, 2006년 현대차 등 대공장노조까지도 금속노조 지부 등으로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통해서 산별전환을 이뤄 냈다. 그런데 산별노조 전환을 추진하던 2000년대 초 간간이 들리던 기득권 귀족노조라는 비난이 이젠 공공연하게, 너무도 태연히 들리고 있다. 너도 나도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문성현 위원장은 외환위기 직후인 99년 연맹의 구조조정 반대 총파업·총력투쟁을 주도해서 업무방해죄·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 위반 등으로 수배·구속됐고, 나는 그를 변호해서 법정에서 노동자투쟁을 처벌하는 법이 부당하다고 최후변론했다. 당시 노동자 파업투쟁을 불법·범죄로 내몰던 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적어도 법으로 보자면 기득권 노조라는 비난은 정당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를 덧붙여야 감히 비난의 말을 할 수가 있다.

4. 20년 넘게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다며 노동변호사로 일하다 보니 이 세상, 이 나라의 실체를 이론이 아닌 현실로 알게 됐다. 우리에게 노조할 자유는 자유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 국가로부터 노동의 자유는 아직 쟁취되지 않았다. 노동자가 노조로 단결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과 쟁의 등 단체행동을 할 자유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보장하고 있지 않다. 노동자의 자유, 노동기본권을 말할 때면 언제나 내세우는 대한민국헌법 33조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도 자유로서 온전히 해석돼 집행되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노조법 등 법률에 의해서 그 행사가 보장되는 것인 양 법원은 노동자 파업투쟁 사건에서 집행해 왔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자유란 사용자 자본의 사치로 알고 있을 뿐 노동자에게 자유는 낯설다. 자유야말로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내가 말해도, 노동자는 임금 인상만큼 좋은 거냐고 되물을 지경이다. 근로계약을 통해 사용자에 대한 복종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노동자라도 자유를 보장받아 행사하면 자유가 생명만큼 귀중하다는 것을 아는데, 이 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자유의 결핍이 자유를 잊게 했다. 단결해서 파업할 자유를 빼앗긴 우리 노동자들은 노조법이 규정한 대로 제 사업장 사용자를 상대로 임단투하는 것이 자유라고 알 뿐이다. 누가 뭐래도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노동자운동이다. 임단투로 노동자의 권리를 더 쟁취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노동자의 자유는 쟁취할 수 없다. 이 세상의 자유가 온전히 노동자의 것이 되기 위해서 노동운동은 나아가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