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과 관련해 마련한 첫 토론회에서 다수 전문가들이 "기업 지불능력을 최저임금 결정기준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용노동부 주최로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저임금 결정의 합리성·객관성·공정성 제고를 위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논의 초안' 전문가토론회에서다.

정부는 지난 7일 개편안 초안을 발표하면서 "근로자의 생활보장과 고용·경제상황이 보다 균형 있게 고려되도록 하겠다"며 고용수준과 경제성장률을 포함한 경제상황, 사회보장 급여현황을 결정기준에 추가했다. 예를 들어 고용·경제상황에 △노동생산성 △고용수준 △기업 지불능력 △경제성장률 지표를 집어넣었다. 이와 관련해 기업 지불능력을 어떻게 수치화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거셌다. 어떻게든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낮추는 장치로 기능할 것이라는 비판이 높았다.

"최저임금 결정기준 단순화해야"

전윤구 경기대 교수(법학)는 이날 토론회에서 "고용·경제상황 지표 중 기업 지불능력을 고려하겠다고 했는데 이게 과연 독립적 지표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한 뒤 "구간설정위원회가 당연히 고용수준과 고용효과라는 부분에서 기업 지불능력을 고려할 텐데, 이를 고용수준과 대등한 독립지표로 설정할 경우 적정한 임금인상 효과를 감소시킬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운영된 최저임금 제도개선TF에 참여했던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 지불능력이란 게 천차만별인데, 일률적이고 추상적인 기준으로 기업 지불능력을 법에 명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동안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고용·경제상황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해 왔다"며 "결정기준으로 고려됐던 근로자 생계비도 실제 '미혼 단신가구'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결정 과정에서 근로자 생계비가 충분히 반영됐다고 보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현행 결정기준이 마치 노동자 편향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식의 지적은 옳지 않다는 얘기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사회학)는 "결정기준의 단순화"를 주문했다. 권 교수는 "경제성장률은 이미 기업 지불능력과 고용수준 등을 포괄하고 있다"며 "차라리 생계비·소득분배율·경제성장률·노동생산성 정도만 고려하는 게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논란 여지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노 연구위원은 "기업 지불능력 지표는 헌법 123조에 명시된 '정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한다'는 내용에 비췄 봤을 때 대단히 중요한 상징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측 토론자로 나온 최태호 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이번 초안을 만들 때 정부 내에서도 '기업 지불능력'이 쟁점화할 것으로 예상했다"며 "기업 지불능력을 어떻게 지표화시켜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를 통해 검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심의·고시일정 연기 가능성도

노동부는 이달 16일 전문가와 노사 양측이 참가하는 최저임금 토론회를 개최한 뒤 24일 대국민토론회를 한다. 21~30일에는 대국민 온라인 설문을 진행한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여론을 수렴한 다음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확정한 뒤 2월 국회 입법을 추진한다.

입법 논의 과정에서 최저임금 심의·고시시점 연기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최저임금법 시행령(7조)에 따르면 노동부 장관은 매년 3월31일까지 최저임금위에 다음 연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해야 한다. 최저임금위 심의를 거쳐 8월5일 노동부 장관이 고시한다. 최태호 과장은 "1월까지 충분히 공론화를 거친 뒤 2월 초 정부안을 만들어 국회 입법이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면서도 "입법화 일정이 지연될 경우 심의·고시시점을 뒤로 연기하는 것도 국회에서 결정해 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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