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보상을 받는 업무상질병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로또 뽑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질병판정위에 속한 비상임 위원들의 문제의식도 다르지 않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에서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이 주제를 놓고 컬래버레이션(합작) 워크숍을 개최한 이유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질병판정위 위원의 고민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업무상질병 판정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과 대안 모색으로 이어졌다.

배심원? 전문가? 대리인? 우리는 누구인가

업무상사고와 달리 업무상질병은 업무관련성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2008년 이전까지는 근로복지공단이 위촉한 자문의사협의회 자문을 거쳐 업무상질병 여부를 결정했다. 산재보험료를 집행하는 기관인 공단이 산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높았다. 그래서 준독립적인 기구에서 노사 추천을 받은 전문가들이 업무상질병 여부를 심사하는 지금의 질병판정위 제도가 만들어졌다.

질판위원은 △변호사·공인노무사 △조교수 이상 교직원 △의사 또는 한의사 △5년 이상 산재보험법 관련 업무 종사자 자격조건을 갖춰야 한다. 전국 질판위원은 180여명인데 3분의 2 이상은 노사 단체가 추천한 사람들로 채워진다.

질판위원인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질병에 대한 직업의 기여위험분율이 모든 암 사망에서 4% 정도라는 보고가 있다"며 "개별 산재사례에는 적용하기 어렵지만 사회적 합의 수준으로서 인정기준을 설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업의 기여위험분율은 질병의 원인에서 직업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그는 "질판위원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기 어렵다"며 "판례와 법령에 대한 해석과 적용을 하는 법률가인지, 상식에 기반을 두고 판단하는 배심원인지, 전문적 지식을 앞세운 전문가인지, 소속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리인인지 경계에 서 있다"고 설명했다. 류현철 전문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을 정하는 기구를 별도로 설립하고, 기준적용 적정성만 가리는 제도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판정기구 독립성·판정 신속성 확보해야"

업무상질병 판정제도 개선과제를 발제한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업무상질병 판정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주문했다. 권 노무사는 "질판위는 공단 산하기구에 불과하다"며 "보험료를 걷는 기관이 보험료를 주는 기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 공정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2주 이내 짧은 치료기간의 질병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소견만 있으면 전문조사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업무상질병의 신속한 판단을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며 "지금의 업무상질병 판정제도에서 판단의 타당성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신속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질병판정위는 20일 이내에 심의를 마치도록 규정돼 있지만 인력이 부족한 탓에 심의하는 데에만 5~6개월 걸리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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