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한 달 전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하자마자 상영관에 가서 영화를 봤다. 현재 진행형의 역사에 관해 잘 말하지 않으려 하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도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최초로 다뤘다 해서 몹시 궁금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을 자연스럽게 쉬기가 어려울 만큼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통찰력에 새삼 놀라면서 그 장면들과 내러티브에 빠져들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대중적 인기를 끌자, IMF 구제금융으로 귀결됐던 1997년을 영화가 얼마나 정확히 묘사했는지가 논란이 됐다. 특히 조선·중앙·동아와 종편, 경제지들이 영화가 인물과 사건을 왜곡했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기록이 아니라 재연에 충실할 수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97년 벌어졌던 정치·경제적 사건을 기록한 일지가 아니라 97년 위기를 통과하며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는 누가 살아남고 누가 희생됐는지를 형상화했다. 영화 곳곳에 비수처럼 깔려 있는 장면들. IMF 구제금융으로 가면서 노동조합이 파업이나 일삼는 한국 사회를 확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부 관료들, 중소기업·서민들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 실패의 진실을 알리는 대신 삼성 등 극소수 재벌대기업 살리기에 주력하는 정치적 선택, 미국 정부 고위관료와 함께 입국해 97년 대선후보들의 각서를 받아 와야만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요구하는 IMF 총재 등등.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어떤 사회과학 서적보다 더 날카롭게 97년 위기의 본질을 보여 줬다고 감탄했다. 상업영화가 사회운동진영보다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시한 것에 열패감마저 느끼며, 관객들의 영화평들을 오랜 시간 검색해 봤다. 그러고는 완전히 좌절했다.

내가 읽은 영화평 대부분이 IMF 구제금융으로 가게 만든 당대의 권력(김영삼 정권과 신한국당)에 대한 비판은 공유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IMF와의 재협상”을 약속하며 대통령에 당선되고, 아직 취임도 하기 전인 대통력직인수위 시절 ‘노사정 대타협’을 압박하고, 취임 이후에는 금융·기업·노동·교육 4대 부문 구조조정을 관철시켰던 김대중 정권, 이른바 ‘DJ노믹스’를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포장으로 비정규직을 제도적으로 양산하는 법·제도를 구축하고 차별과 양극화의 원인은 대기업·정규직 민주노총 조합원들 책임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낸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는 김영삼과 보수주의정당이 망친 경제를 살리려 김대중·노무현 (그리고 문재인으로 격세 계승된) 신자유주의 정권이 애를 쓰고 있다는 격려까지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영화평들을 읽고 나서 “우리는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하는 자괴감에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 경제는 그 어떤 경제권보다 금융자본의 투기와 세계 자본주의 위기에 취약해졌고, 국민경제 성장과는 유리된 재벌 위주의 초과 착취 시스템이 공고해졌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에게 일방적 비용을 전가하는 구조조정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 왔고, 불안정노동을 양산하는 노동법 개악에 맞서 총파업을 조직하려 애썼다. 해고와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집요하게 자행되는 물리적 폭력에 맞서 노동조합을 지키려 목숨까지 내걸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헬조선을 낳은 97년 체제의 원인에 대해 아직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요구가, 우리의 실천이 97년 체제를 진실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자신도 아직 우리가 저항하고 있는 체제의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은 희망을 말할 수 없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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