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올해 한반도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몰아닥쳤다. 남북이 만났고 북미가 만났다.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했다.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가슴 뭉클하게 봤을 한 사람이 있다. 황해도 은율을 고향으로 둔 백기완(86·사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그는 올해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장면을 병상에서 지켜봤다.

백 소장은 언제나 노동자·민중의 삶과 투쟁 현장에서 함께했다. 퇴원을 한 이후에도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도 그랬다.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농성장과 억울한 노동자가 있는 현장에는 그가 있었다. 노구를 이끌고 찾아와 힘을 불어넣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백 소장을 만났다. 그는 평생 군부독재와 분단체제에 맞서 민주화운동과 통일·노동운동에 헌신한 ‘재야의 거목’이다. 1987년과 92년 독자 민중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분단된 나라는 나라 아닌 분단체제”
“남북 실권자들 만날 때 눈물 나게 좋아”

- 4·27 남북정상회담을 병원에서 지켜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심정이었나.
“우리말로 염통, 그러니까 심장수술을 했어. 제일 어려운 수술이라는데, 그걸 하고 나서 정신이 들락날락할 때 남북에서 실권을 쥔 사람들이 만났지.”

갑자기 백 소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첫 번째 호통.

“정상이란 말 쓰지 마! 남쪽의 우두머리고, 북쪽의 우두머리야? 그런 나쁜 신문용어를 쓰지 말라고. 남북의 실권자들이라고 하면 되지, 정상이라고 하나. 내 ‘말따구’가 싫으면 대담하지 말자고.”

“괜찮다”는 대답에 백 소장은 “괜찮아? 이런 말도 넣어. 이런 말도 내가 아니면 못해”라며 말을 이었다.

“무슨 정상이야, 정상이, 나는! 이걸 전제로 하라. 분단된 나라는 분단체제이지 나라가 아니라고 봐. 우리가 수만 년 동안 나라가 하나 됐는데 둘로 나뉜 게 우리나라야? 나라라고 하지 말자고. 분단체제라고 하자고. 그러면 국가관이 없다고 해. 분단관이 어떻게 국가관이야!”

그의 기개는 여전했다. 오히려 반가웠다.

- 남북 실권자들이 만났다. 어떤 생각을 했나.
“그때 내가 (정신이) 들락날락할 때 들었는데도 눈물 나게 좋았어. 눈물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왈칵 나와. 남북 실권자들이 만났다, 그거 참 잘됐다. 그랬어.”

- 남북 실권자들이 ‘한반도 평화시대’ 개막을 선언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했다.
“그 약속도 아주 잘했어. 한반도에서 전쟁을 없애야지. 핵을 없애야지. 핵은 북핵만 핵이 아니야. 북핵도 핵이지만 진짜 핵은 미국 핵이야. 한반도 바다와 땅과 하늘에 가득 차 있는 게 미국 핵무기야. 그걸 없애야지. 아울러 북핵도 없애고.”

백 소장은 시종일관 우리말의 중요성, 그리고 정확한 표현을 강조했다.

“언론을 한다는 사람들은 역사적 사태를 역사적 사실로 정확하게 지적하는 낱말을 끄집어 써야 해. 한반도의 핵은 미국 지배의 물리적 구조인 바로 그 핵이야. 그걸 없애야지. 북쪽도 핵 있으니 같이 없애자, 이렇게 나와야지.”

또 한 가지. 그는 인터뷰란 용어 대신 ‘댓거리’(대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우리 둘의 대담도 댓거리(대거리)라고 해야지. 대담은 한문표기이기도 하지만, 서구문명 표현양식이야. 우리는 댓거리, 이래야 해. 서로 다른 의견을 끊임없이 부딪치게 만드는 거야. 인간적으로 통일해 가는 것, 이것을 댓거리라고 하지.”

그러면서 백 소장은 “그대로 쓸 거야?”라고 재차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신문이) 안 팔릴 텐데”라고 짐짓 걱정했다.

“한반도 분단, 전제는 미국의 반성”
분단체제는 남북만이 아닌 국내문제


- 그 약속이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 뭐가 걸림돌이라고 보나.
“첫째! 미국이야. 한반도 비핵화다, 한반도 전쟁을 없애자, 다 좋은 이야기 아니야. 그게 진짜가 되려면 한반도 분단이 뭐냐, 이걸 알아야 해. 미국 조야는 논리도 없고 결론도 없어. 이 땅에 사는 우리들도 논리도 없고 결단도 없어. 그럼 뭐냐, 분단은 뭐냐. 미국 정치꾼들과 실력자들이 뉘우침이 없어. 아울러 이 땅에 있는 실력자들도 뉘우침이 없어. 내가 그걸 딱 지적할게.

남북문제다, 평화다, 비핵화다, 이야기하기 전에 진짜 한반도 문제, 인류 비극의 문제를 제대로 알려고 하면, 한반도 분단이 뭐냐, 이걸 알아야 해. 한반도 분단은,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침략이야. 그냥 침략이 아니라 전쟁도발이야. 가장 반인륜적이고 반역사적인 방법으로 한반도에 분단을 강요한 거야. 한반도 내부를 침략하고. 전쟁도발로 본다면 미국이 먼저 반성해야 하잖아. 미국 책임을 먼저 물어야 답이 나오지. 그런 다음 한반도 비핵화다, 한반도 반전쟁적인 지역화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 미국의 반성 없는 모습이 답보상태를 만들고 있다는 뜻인가.
“그런 인식 없이 책략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이익이 되냐 아니냐 선거에 도움 되냐 아니냐로 본다? 한반도 문제는 수만 년간 한덩어리로 살아온 우리나라 허리를 뚝 끊었다는 거야. 목숨을 끊었다는 말이지. 이건 살인범죄고, 침략범죄야. 반인륜적, 나아가 반역적 범죄지. 반성을 전제로 한반도 문제를 이야기해야지. 그게 출발이 안 되니까 만나자고 했다가 안 만나고 이러잖아. 한반도 사는 사람들은 반핵, 전쟁구조 폐기를 말하기 전에 한반도 분단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 지도록 요구해야 돼. 거기서 출발해야 해.”

백 소장은 ‘분단체제’의 시선을 남북만이 아닌 국내 문제로도 봤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분단은 뭐야, 남북 분단만이 아니지. 나쁜 놈과 좋은 놈으로 딱 갈라졌어, 있는 놈과 아닌 놈으로 갈라졌어. 사람과 사람 아닌 놈으로 갈라졌어. 이게 분단체제의 구체적인 모습이고, 어려운 말로 하면 역사적 현실이라고. 이에 대한 뉘우침과 반성, 해결하겠다는 의지 없이는, 한반도 문제는 진전 못 시켜.”

“김용균은 사회적·경제적 분단으로 죽었다”
“절대 땅에 눕지 마라” <아, 김용균 동지여> 바쳐

“한반도 분단현상으로 봐서,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한반도 통일은 무엇이냐 이 말이야. 확고한 신념과 역사적 체험을 갖고 하는 이야기야.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비전쟁화, 한반도 평화통일은 뭐냐 이거야.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것만이 하나가 아니야. 내가 사는 이 현실로 보면 있는 놈과 없는 놈, 딱 갈라졌잖아. 없는 놈은 라면 한 봉지로, 대학도 나오고 군대 다녀온 젊은이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껴서, 모가지가 떨어져 나가고, 몸뚱아리가 떨어져 나가고, 등떼기(등허리)가 떨어져 나가고, 그렇게 죽었잖아!”

한국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씨는 지난 11일 새벽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머리와 신체가 훼손된 처참한 모습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백 소장은 가슴을 쳤다. 그는 13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고 김용균 추모문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문화제에 부치는 시 <아, 김용균 동지여>를 바쳤다.

“김용균 동지, 아, 김용균 동지/ 동지는 눈을 감은 게 아닙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압제 반역이 동지를 학살·도살·참살한 것입니다/ 원통히 쓰러진 이는 눈을 감지 못한다는 옛말대로/ 두 눈이 몽뎅이(몽둥이)가 되고 칼이 된다는 옛말 그대로/ 동지를 참살한 것들이 오늘의 체제로 뻔뻔히 살아 있는데/ 어찌 눈을 감겠어요./ 회까닥 일어나 쳐들어가자구요/ 우리도 그 뒤를 따를 것이니/ 동지여, 절대로 눈을 감지도/ 땅에 눕지도 마시고/ 저 살인마 반생명인 체제와 맞짱을 뜨시자구요/ 그 어떤 장례식도, 그 어떤 애도도, 모두 뿌리치고/ (후략)”

백 소장은 “절대 땅에 눕지 마라, 장례식도 치르지 마라, 너는 학살당했고 도살당했고 참살당했어, 바로 이 체제가 너를 죽인 거야. 작업현장도 체제의 하나야. 표현에 지나지 않아. 이 체제가 너를 죽였으니까, 어떤 놈이 나를 죽였느냐, 이게 바로 살인체제다, 하면서, 눈깔을 부릅뜨고 네 피눈물이 한이 되고 몽둥이가 돼라, 그렇게 썼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 문제에서 우리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봐. 분단이 뭐냐는 거지. 김용균이 사회적 분단, 경제적 분단 체제에서 죽었어. 너무 딱하잖아. 이걸 해결하는 게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고, 내용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야. 사람들이 분단체제 현상을 이해하지 않아. 권력을 쥔 사람들이 깊이 있는 성찰을 하면서 분단문제에 다가갔으면 좋겠어.”
 

정기훈 기자

“개미 새끼도 집 찾아가는데 나는 못 가”
고문 속에서 ‘백두산 천지’가 일으켜 세워

- 고향 땅을 빨리 밟고 싶으실 것 같다.
“요만한 개미 새끼도 먹을 걸 찾으러 나왔다가 날이 저물면, 막 집을 찾아가. 나는 개미 새끼도 아니고 사람인데도…. 내 고향이 황해도야. 여기서 평택보다 가깝고, 수원보다 조금 멀어. 그런데 못 가잖아. 남북 실권자들이 만나고, 백두산 천지 올라가고 그러는데, 나는 병석에서 다 죽어 가면서 뭘 느꼈겠어.”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남 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읊었던 시가 있어. 1980년 군사양아치들한테 잡혀가서 매 맞고 80킬로그램 넘던 내가 38킬로그램으로 떨어졌어. 내 몸에서 얼마나 떨어져 나갔겠어. 정신이 들락날락하는데도 딱 고향 가고 싶은 생각은 잊어버리지 않았어. 죽어도 내가 어떡하든지 고향 한번 가 보고 죽어야지 그랬다고. 그때 쓴 시가 <백두산 천지>란 게 있어.”

“저~ 풋것의 신비인 양/ 영혼의 그림자 드리운/ 백두산 천지/ 목에서 황내가 나도록/ 타오르고 싶어라/ 이 거친 숨결 이 가쁜 숨결로/ 압록강 바람결을 거슬러/ 두만강 뗏목 위 흐득이는/ 영원한 해방의 노래/ 독립군의 핏자국/ 하늘이 찢어져라 선창하고 싶어라/ (후략)”

한바탕 시를 읊고 난 백 소장은 극단의 고문 속에서 삶의 의지를 놓지 않게 한 게 <백두산 천지>라고 강조했다.

“내가 군사양아치들한테 맞고 쓰러져 감옥 독방에 있는데, 오줌똥을 받아 내야 하는데, 받을 사람 없어. 똥둑간(뒷간)이 2~3미터 가면 있더라고. 기어서 가는 거야. 똥을 싸는데 앉을 수가 없잖아. 두 무릎이 꺾였으니까. 탱탱 부어 시꺼매. 으슬으슬 춥고. 그때 나를 일으킨 게 백두산 천지야. 한번 가 보고 싶은 곳. 근데 남쪽의 높은 사람, 북쪽의 높은 사람이 만나서 악수하고 껴안고. 난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어. 나 같으면 백두산 천지를 보면 옷을 훌훌 벗고, 아무리 차갑지만 뛰어들었을 거야.”

그러면서 백 소장은 다시 한 번 <백두산 천지> 시구를 읊었다.

“나 같으면 그러면서 뛰어들었을 것 같아. 요새 젊은이들은 옛날 할아버지와 염통 속이 다르니까. 남과 북이 만나서 물방울 튕기면서. 그렇게 좋더라고. 나는 못 가 봤지만 너희들은 만났으니까, 눈물겹다. 난 병석에서 죽어 가면서도 혼자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어.”

“민중혁명만이 진정 분단체제 끝낼 수 있어”
“민중 피눈물 해결 위해 통일만이 살 길”

백 소장은 근원적 문제로 돌아왔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분단문제는 단순한 남북문제가 아니야. 세계 독점자본의 문제고, 국내에 부패한 독점자본의 문제야. 이 자식들 딱 틀어 쥐고 안 놓으려고 해. 신문과 방송국 다 장악하고 안 내놓으려고 하지. 분단을 팔아야만 장사가 되거든. 분단상황이 있어야 돈벌이가 유지된다 이 말이야. 통일은 말로만 하는 거지. 겉으로 안 해. 남과 북의 높은 젊은이들은 꼭 다시 만나야지. 안 만나는 것보다 만나는 게 좋아. 통일은 분단체제를 해결하는 거야. 분단체제는 군사적으로만 귀결되는 게 아니야. 정치·경제·사회·정서적으로 귀결돼 있지. 이걸 타파해야 돼. 위대한 민중혁명이 일어나야 해.”

-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임하고 출범했다. 기대가 많았는데,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주의 정권의 한계인가.
“분단체제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피해 받는 자가 누구야? 바로 민중이야. 우리말로는 ‘니나’라고 하지. 니나노~ 늴리리~ 할 때 그 말이야. 이게 민중이란 뜻이야. 예전 노인네들, 할머니들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지. 민중? 당연히 모르지. 쓸 줄도 몰라. 그런데 니나는 알아. 니나노라고 했어. 배고프고 춥고 떨리지만 우리도 활개 치자 이거야. 이게 바로 니나야. 알겠어? 괜히 술 한잔 먹고 늴리리야 하는 소리가 아니야.”

“민중이 들고일어나야 해. 분단체제는 우리를 괴롭히는 거니까. 남쪽이 됐든 북쪽이 됐든, 민중이 일어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줘야지. 그게 문재인이가 할 일이야. 그런데 자꾸 정치행태로만 나가니까 걸리적대는 것도 많고 헐뜯는 놈도 많지. 분단 때문에 70년 동안 피눈물 흘렸어. 피눈물 흘린 사람들은 지금 죽어 가고 있는데, 분단만 말하면 뭐해? 분단의 구체적 현실을 타파할 생각을 해야지. 문재인 정부는 관심이 없겠지만, 그랬으면 좋겠어.”

- 노동·시민·진보운동 진영은 무엇을 해야 하나.
“분단이 체제화돼 있어. 북쪽을 만나면 국가보안법에 걸려. 북쪽에 가도 국보법에 걸리지. 그걸 없애야 해. 아니, 내 나라 내 땅에 가겠다는데 국보법에 걸린다? 미국이 분단체제를 만들었잖아. 그런데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체제와 법률이 아니다 이 말이야. 우리가 따라갈 게 아니지. 민중의 피눈물을 해결하려면 통일만이 살 길이고 희망이야. 지금 몇 사람이 권력을 갖고 있어. 있는 놈과 없는 놈으로 분열돼 있어. 이걸 해결하는 게 통일이고 희망이라고 민중적으로 이야기해야지. 아무도 안 하잖아?”

“노동자는 껍질 벗으며 새로 태어나는 니나”
“휴전선을 맘판으로 만들고 인류 미래 제시해야”

백 소장은 갑자기, 매일노동뉴스 제호에 있는 ‘뉴스’를 지적했다.

“뉴스라고 부르지 말고 진짜 우리말을 써야 해. 한글학회도 이 말을 썼으면 좋겠어. ‘새뜸’이라고 해야지. 새롭게 떴다, 이 말이야. 새롭게 알을 깠다, 이 말이야. 끊임없이 새롭게 알을 까고 나왔다는 말이다. 오지게 까고 나와 보니까 껍데기가 생기고 또 까고. 새뜸이 뉴스 아니겠어? 통일도 새뜸이지. 날마다 새롭게 껍질을 까고 나오니까. 오늘 까고 내일 까고. 끊임없이 껍질이 생기니까.”

백 소장은 “노동자는 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자 문제는 이 땅에 사는 사람의 문제지만, 인류의 문제이기도 해.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제도화했거든. 노동자가 더 이상 사람이 못되도록 만들었어. 모든 법률과 체제가 그래. 노동자는 니나야. 끊임없이 껍질 벗으면서 새로 태어나는 거야. 이게 니나야. 지구적·인류적·세계사적으로 볼 때 니나들이 앞장서면 변혁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돼. 그것이 한반도에서 싹틀 때 한반도에 진짜 평화가 오는 거야. 진정한 평화운동은 니나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거지. 변혁운동에 자유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

백 소장은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했다.

“어디 가든지 광고 얻으려면 돈 있는 놈들에게 아첨해야 하고, 그 회사 편향의 나발 불지 않으면 광고 안 줄 거고. 종속되고, 종속되고. 종속 안 되면 죽지. 이게 자본주의 체제야. 그야말로 범죄구조라 이 말이야. 이걸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썩물’이라고 해. 썩은 물인데. 자기만 썩는 게 아니라 옆 사람 이웃·인류·우주까지 썩게 하는 게 썩물이라고. 썩물은 뿌리 뽑아야 하는 거야. 썩어 문드러진 자본주의는 썩물이지. 나와 니나들의 생각이야.”

백 소장은 휴전선 ‘맘판’을 제안했다.

“내가 책에도 썼어. 휴전선에 맘판을 만들자고. 작살판·개판·죽일판·살판. 이걸 때려 부수는 게 맘판이야. 그걸 없애는 게 맘판이야. 경지를 우리말로 다락이라고 해. 어떤 다락이냐, 경지냐, 맘판이. 거짓말하는 놈, 남을 속이는 놈, 내 것밖에 모르는 놈, 남의 피눈물로 자기만 떵떵거리며 잘사는 놈. 이들은 못 올라가. 그 판에 끼지도 못해. 끊임없이 깨어나는 니나만이 올라가는 경지야. 그 경지를 다락이라고 하지.”

“휴전선을 맘판으로 만들고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면 좋겠다. 누구든 여기 들어오면 울음보가 터지는 울보를 만들어야지. 분단 70년이 넘었는데 옆에 있는데도 못 가잖아. 나도 가고 싶지. 뭐, 못 가도 좋아. 나는 못 가더라도 젊은이들은 내 나라, 내 땅에 맘대로 갔으면 좋겠어. 휴전선만 맘판으로 만들지 말고, 분단을 없애 분단의 땅덩어리를 맘판으로 만들자 이거야. 거짓말하는 놈, 사기 치는 놈, 자기밖에 모르는 놈, 돈밖에 모르는 놈은 못 올라가는 맘판을 만들어야지. 진짜 사람과 자연과 함께 다 같이 더불어 잘사는, 판의 최고 형태를 맘판이라고 하지. 한반도를 맘판으로 만들자 이거야. 그게 참된 평화운동의 지표가 돼야지.”

“1년 넘게 굴뚝농성을 하는데 아무 일 없다니”
“잠자지 말고 나서는 게, 그게 새해 새날”

- 그것이 노나메기 세상인가.
“노나메기 세상이지.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우리 모두 잘살자(는 것이다). 성경을 봐도, 불경을 봐도, 코란을 봐도, 과학적 사회주의를 봐도, 다 같이 일해서 다 같이 잘살자는 말은 해. 그런데 올바로 잘살자는 말은 안 해. 니나가 해야지. 매일 새롭게 깨어나는 니나가 해야지. 그게 노나메기라니까.”

백 소장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다시 자리를 고쳐 잡았다. 파인텍 노동자 고공농성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사는 뒷골목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한복판 이야기야. (파인텍) 노동자 두 명이 75미터 높이 굴뚝에 올라가 찬바람 속에서 1년을 넘겼어. 1년을 더 넘길지도 모르고. 어찌 보면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계속 고공농성만 할지도 몰라.

박래군·송경동 등 몇 사람이 동조단식을 한다잖아. 횃불이란 건, 누가 불 하나 들면 들라고 하지 않아도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다 들어. 한반도 전체가 다 횃불을 드는 거야. 외롭게 고공에 올라가서, 오줌똥 어떻게 싸겠어? 먹는 거 어떻게 먹겠어? 1년이 됐는데 (어떻게) 아무 일이 없어. 자기 아들 똥만 예쁜 거야? 남의 아들 똥도 예쁜 거지.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상징이 고추나 숯이야. 우리 생활 주변에 있는 걸을 새끼로 엮어서.”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어딜! 박근혜 지지하는 놈들이 아직 국회를 차지하고 있어. 우리는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전두환·이명박·박근혜, 다 내쫓고 몰아냈잖아. 그게 우리 삶이야. 자신감을 가져야지. 노동자가 1년 넘게 땅을 못 밟고 있잖아!”

언론에 대한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 산골짜기 물방울이 겹치고 겹치면 엄청난 물살이 된다고. 성난 파도가 되지. 사람들은 물살이 세다고 할 거야. 그 물살이 사람들의 피눈물(로 이뤄진) 물살이라는 걸 깨우치게 하는 게 언론의 사명이야, 알겠어?”

백 소장의 안타까움은 세월호로 이어진다. 최근 그의 시 <갯비나리>를 원작으로 세월호를 다루는 창작음악극 <쪽빛의 노래>가 준비되고 있다. 공동제작위원장은 김정헌 4·16재단 이사장·신학철 전 민예총 이사장·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정성헌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이다. 총감독은 임정현 이소선합창단 대표가 맡았다.

<갯비나리>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백 소장이 지은 시다. 제작위원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날. 그 바다를 바라보던 백기완의 뇌리에는 절망의 나락에서 신음하던 1980년 겨울이 돌아왔다. 1980년 겨울의 목소리가 시간을 달려서 다시 문장으로 꿰어 맞춰졌다. 잊지 않기 위한 울음으로, 백기완의 <갯비나리>는 그렇게 완성됐다”고 소개했다.

백 소장은 “웬 젊은이들이 말이야 (한다고 하더라고). 임정현이라는 노래하는 친구, 예전 서울대에서 노래패 만들고 그랬어. 문승현·김정환 같이 모여서 노래패 만들어서 말이야.”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청년’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끊임없이 껍질을 벗는 니나의 옆에서 힘을 불어넣는 ‘청년’ 혁명가. 시간은 그의 열정과 격정을 비껴간 듯했다. 어느새 ‘댓거리’ 종착역에 다다랐다. 새해 덕담을 부탁했다.

“새해 새날이 올 때 난 불안해. 매일매일 캄캄한 밤을 헤치다 보면 매일매일 새날 새아침을 찾는 거지. 1월1일만 새날이 아니야. 덕담이라…. 나도 옛날 사람이라 아들딸이 넷이야. 설날에는 집에 안 들어갔지. 사내자식이 양말 한 짝도 못 사는데, 집에 어떻게 가겠어? 못 들어가는 거지. 연말이라고 들어가도 밤 12시 되기 전에, 애들 잠들면 도망 나왔지. 다른 데서 잤다가 며칠 있다가 다시 들어가. 다 늙은 할아버지도 그렇게 새날을 맞이했어. 여러 번, 수십 번,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어. 껍데기 벗는 놈은 흔들리지 않아. 껍데기 싸서 자기 것만 차지하겠다, 지키겠다 하면, 무너질까 봐 겁나서 흔들리지. 껍데기 벗는 사람은 끊임없이 새해 새날, 다가오는 밤 12시까지 껍데기를 깨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거야. 잠자지 말고 나서라, 이 말이야! 그게 새해 새날이야.”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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