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는다고 현실의 어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외면한 결과는 또 다른 불편함이다. 어떨 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누군가 표현처럼 노동자 마디 굵은 손가락을 만져 보자. 노동현장의 차별과 고통을 직시하자.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8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당선작을 보내왔다. 대상 1편과 우수상 4편을 소개한다.<편집자>

결혼하고 나서 중풍을 14년째 앓던 시어머니, 가계부를 매달 검사하던 완고한 시아버지와 함께 부산에서 살았다. 5년 만에 입이 돌아갈 정도로 나는 병이 났고, 남편 일이 잘 안 풀리면서 시댁을 나와 친정으로 갔다. 2년 만에 겨우 목돈을 조금 모아 남편 직장을 따라 경기도 일산에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월세가 조금 높은 집이라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았지만, 딱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고 살다가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첫해 가을에 그 학교 학예회가 있었는데, 어느 고학년 교실에서 칭찬과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반에 근위축증에 걸린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학년 초에 담임은 체육시간 때 그 아이에게 카메라를 하나 건네줬다. 교실을 지키기보다는 반 친구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수업에 참여하게 했고, 그렇게 아이가 1년 동안 찍은 사진을 학예회 때 학부모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이 사연을 신문에 실었고, 이 일이 계기가 돼 큰아이 학교의 방과후학교 독서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다.

첫 학기를 시작하는 날 독서교실 정원은 40명이었는데 65명 정도가 신청했다. 하루만 출근해서 두 타임 수업하기로 했다가 이틀 출근해 세 타임을 일하게 됐다. 주 5시간, 이틀 일하고 160만원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 방과후학교 강사가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10여년이 흘렀다. 부장 선생님이 보자고 한다. 나보다 나이가 스무 살은 어리지만 긴장한 맘으로 부장 선생님께 갔더니, 내년도 강사임용 대상에서 나하고 댄스강사만 탈락했다는 통보를 전한다. 댄스강사는 학교 앞에 학원을 개업했으니 탈락하는 게 당연했지만, 나의 탈락 사유는 황당했다. 학부모 모니터가 수업에 들어왔는데(엄밀히 말하면 복도에 숨어서 모니터링했다) 내가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고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봤단다. 재임용 탈락 이유가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다는 것이라니. 고향을 떠나온 지 15년이 지났는데 노력을 해도 표준말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런데 말이다. 이 학교 교감선생님은 부산에서 파주로 전근온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규직 교사는 사투리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고, 비정규직인 방과후 강사는 사투리를 쓰면 안 된다는 말이다. 휴대전화 사용 문제도 그렇다. 수업시간에 학부모에게 문자도 많이 오고, 결석한 아이들 부모에게는 문자를 보내야 한다. 그것도 업무 중 하나인데 어떻게 휴대전화를 안 볼 수가 있는가? 더군다나 아이들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 중에 잠깐 휴대전화를 봤을 뿐이데….

어디 이런 일만 겪었겠나? 수업과 같은 시간에 잡힌 면접을 보느라 눈 오는 자유로를 죽음을 각오하며 운전해 달렸고, 11월에 개교한 학교에서 겨우 2개월 수업했는데 계약해지를 당하기도 했다. 13년 동안 방과후 강사를 하면서 여기저기 눈치 보며 살다 보니 ‘을’의 입장이 아니라 ‘정’ 정도의 사회적 존재감이라고 할까? 갑은 학교장, 을은 방과후학교 부장, 병은 코디나 행정실무사다. 그러니 대부분 방과후 강사들은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인식보다는 프리랜서라고 착각하고 산다. 아마 70여종의 학교 직종 중에서 존재감이 가장 낮은 직업군일 것이다. 그러함에도 방과후 강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까닭은 하루에 3~4시간 근무에 비교적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이상한 자기 만족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언젠가부터 나는 남편에게 했던 “여보, 왜 방과후 강사는 노동조합이 없을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노동조합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속상하고 힘들어서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운명처럼 2015년 나는 전국방과후권익실현센터를 조직했다. 그리고 2년 후에 방과후강사노동조합을 발족해 현재까지 방과후 강사들의 울타리 노릇을 하고 있다.

방과후 강사는 개인사업자다. 그래서 특수고용직에 속한다. 말이 특수고용직이지 퇴근 후에도 학교의 업무 지시를 받으며, 학교와 교육청의 관리를 받고 있다. 노동자가 분명한데도 우리를 개인사업자라고 지칭한다.

절친인 음악강사가 있다. 그 강사는 오카리나를 가르치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 상을 당했다. 그런데도 학교에 출근했다. 담당선생님께 시어머니 상을 당했고,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출근했지만 내일은 탈상이라 출근을 못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담당선생님은 “어머, 선생님 오늘 학교에서 안전교육이 있어서 수업이 없는데 출근하셨네요” 하고 답했다. 안전교육 때문에 휴강이었는데도 당사자에게 통보하지 않은 것도 속상했고(알았다면 상을 당하고도 출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말본새도 섭섭했다. 상사를 알았다면 당연히 위로의 말이나 “상중에 왜 출근했냐”고 묻는 게 사람의 도리 아닌가?

어제도 어느 강사에게 상담전화가 왔다. 요즘 면접 철인데 면접관들이 “미혼이냐 기혼이냐, 임신이나 출산계획은 있느냐”를 꼭 물어봐서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 국가적으로 인구 감소 때문에 출산율을 높이려 하는데 방과후 강사는 임신을 해서도 안 되고, 만일 출산을 할 경우에는 해고당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며칠 전 울산에서 방과후 강사들이 기자회견을 했다. 강사들은 학교에 주차를 못하고, 위탁 회사에 임금의 70% 이상을 떼인다고 증언했다. 또 심폐소생술 교육 중에 건강식품이나 크루즈 여행권 영업을 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주차장이 부족해서 학교에 주차를 못하고, 주변 골목에 주차하기 위해 적어도 수업 한 시간 전에는 출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 지역은 주차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방과후 강사는 ‘외부인’이기 때문에 주차공간이 넉넉해도 학교 주차장을 사용하지 못한다. 수업 내용상 무거운 짐이 많은 요리나 도자기 수업을 하는 과목 선생님은 엘리베이터도 사용하지 못한다.

위탁 문제도 그렇다. 학교에서는 방과후학교를 외부로 떼어 내려 하거나 민간위탁하려는 경우가 많다. 방과후학교 업무가 힘들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간위탁으로 넘기면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음에도 위탁이 마치 최고의 교육인 양 포장한다. 울산의 강사들이 70%의 노동가치를 빼앗긴 억울함을 울면서 호소하는 것을 보면서 방과후 강사를 보호해 줄 사람이나 기관은 적어도 이 국가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학교라는 신성한 곳에서 교장이 있음에도 교사들에게 민간업자가 심폐소생술 교육을 하고, 상조 상품이나 건강식품을 파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어떻게 학교가 앞장서서 상행위를 하도록 내버려 두는지 교육청에 묻고 싶다. 이러한 일이 해마다 전국에서 일어나는 까닭은 안전교육 전문가를 초빙해 교육을 할 경우에 몇십 만원의 경비가 들기 때문이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형식적인 교육만 시키고 강사들에게 건강식품이나 각종 상품을 사도록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학교나 교육청은 아이들의 생명에 직결되는 안전교육이 중요하지만, 강사들에게는 몇십 만원 비용을 투자하기 싫은 것이다. 어디 안전교육비만 투자하기 싫은가? 수용비라는 명목으로 강사료 중 5~8%의 수용비를 떼면서도 쓰레기봉투나 보드마커도 강사가 사야 하는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언젠가 한 강사가 교무실에서 커피를 마신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 학교 교사가 “선생님, 그 커피머신 방과후 강사들 마시라고 사 놓은 거 아니에요. 우리 교사들이 돈 모아서 사 놓은 기계입니다”는 말을 했다. 어디 서러운 일이 이 한두 사례겠나! 지면이 부족할 뿐이다.

방과후 강사는 전국에 13만명이 일하고 있다. 방과후학교 신청을 한 아이들이 1인당 2만~3만원의 교육비를 내고, 학교가 그것을 받아 강사들에게 지급하는 수익자 부담 구조다. 그래서 인기 있는 과목이나 강사의 능력에 따라 수입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특기적성 지도프로그램으로 시작된 방과후학교는 실시된 지 24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방과후학교 관련 법안이 없기 때문에 모든 권한은 학교장이 쥐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처럼 사투리가 심해도 고용이 안 되고, 부모님 상을 당해도 수업을 해야 하고, 임신을 해도 출산과 함께 자동 해고된다.

강사료 문제만 해도 그렇다. 몇 년 전만 해도 도서농어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방과후 강사들은 1인당 2만5천원에서 3만원의 강사료를 받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일부 지역에서 시간당으로 지급하거나 한 학교당 60만원 이하만 줘야 한다고 정해졌다.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봤더니 정교사 초임보다 방과후 강사들 수입이 더 많아서 그렇게 강사료를 정했다는 것이다. 일부 컴퓨터교실 같은 인기 과목들은 수강자가 많다 보니 수입이 많기도 하지만 모든 강사들이 그런 것도 아니고, 만일 수입이 많다고 해도 상여금이나 퇴직금 등 아무런 혜택이 없는데 어떻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비교할 수 있는가? 또한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적게 벌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자기 본위 아닌가. 1인당이 아닌 시간당으로 강사료를 지급하는 강원지역, 한 학교에서 60만원(다른 지역은 100만~150만원)까지만 받아 갈 수 있게 정해 놓은 울산지역이 그렇게 강사료 규정을 바꾼 이유가 정규직 교사들의 의견 때문이었다니 실로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가끔 언론에 방과후 강사 기사가 나면 교사들이 떼를 지어 댓글을 단다. “너네는 학원 강사들과 같다. 공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자다. 그러니 학교 밖에서 가르쳐라. 문화센터에서 쉽게 받은 자격증으로 선생 소리를 듣고 있다.” 이렇게 비정규직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고, 서로 내 밥그릇만 차지하겠다는 현실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거리의 환경미화원도, 버스기사도, 교수도, 방과후 강사도 모두 노동자다.” 그 노동의 가치가 높은지, 낮은지 규정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로가 존중하고 서로 귀하게 여기면 이렇게 거리에서 싸울 필요도 없고 교섭이니, 임금인상 투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임금투쟁을 하는 학교비정규직 조리사가 부러울 때가 많다. 적어도 그들은 법적으로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인정받고, 맘껏 교육청을 상대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방과후 강사들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이미 마음에서 스산한 바람이 먼저 불어온다. 10여개 서류를 써서 면접을 보러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1년마다 적어도 5~10개의 면접을 봐야 하는 방과후 강사들. 면접시간이 학교수업과 겹치게 배정돼 있어서 수업을 포기하거나 면접을 포기해야 하는 방과후 강사들. 그들을 사람들은 특수고용직이라 부른다. 가끔 특수고용직에 관련된 기사를 언론에서 보는데 학습지교사·보험영업직·택배기사·대리기사 같은 업종만 있고 13만명의 방과후 강사들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그것을 확인할 때도 가슴에서 ‘쌩’하니 시리고 아린 바람이 인다. 나는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우리는 특수고용직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교육노동자다.”

언제가 나는 7년 된 직장을 떠나던 날, 그때의 처지가 너무도 속상해서 동료 강사들에게 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내발산초 강사님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번 면접에서 저를 포함해서 다섯 분이 탈락했어요. 7년간 몸담았던 학교라서 아쉬움이 많네요. 우리 직업이 이처럼 7년을 일해도 번번이 동료들과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직업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가 마지막 수업인데 어제 탈락 발표가 나서 샘들과 인사할 여유도 없어서 이렇게 단톡으로 대신합니다. 그동안 선생님들 감사했어요. 특히 늘 웃으며 우리 일을 도와주시던 코디샘의 따뜻한 맘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강사들 입장에서 배려해 주신 부장샘도 고맙습니다. 부장샘 덕분에 이 학교에 대한 애착이 더 많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인사하러 갔는데 뵙지를 못했어요. 인사도 못하고 그냥 떠나면 정말 우리 직업이 뜨내기같이 존재감 없는 비정규직으로 느껴져서 이렇게 글로 마음을 전합니다. 각자 다들 학교에서 긍지와 보람을 잃지 말고 일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도 더 나은 방과후 강사들의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다시 한 번 외친다. 방과후 강사도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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