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16년 6월에 쓴 글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해 5월 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살 김군이 열차에 치여 숨졌을 때 느꼈던 분노와 슬픔이 다시 차오른다. 그때도 절박한 마음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는 법을 만들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위험에 대해 알권리와 작업중지권이 있어야 한다고 썼다. 2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토록 의미가 없는 것이었을까? 애도하며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도록 하자 했던 우리의 다짐은 그토록 허무하고 힘이 없는 것이었을까? 그때 노동자들이 요구한 제도개선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고 김용균님의 죽음 후에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진다는 소식을 듣는다. 정부가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하한형 처벌이 삭제돼 처벌의 실효성이 의심되고, 도급 금지도 매우 제한적이라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수 있을지 의심된다. 그런데 이조차도 국회 논쟁 과정에서 누더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처벌을 강화해 생명과 안전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만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물론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것보다야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완전한 제도개선만으로 죽음의 위험을 줄일 수 있을까.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돼도 김용균님과 같은 죽음은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제도가 강화돼도 관리·감독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태안 화력발전소를 특별근로감독 중이다. 그런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찾아간 때에 서부발전은 현장을 물청소하도록 했다. 특별근로감독 중에도 증거훼손과 은폐가 이뤄진 것이다. 노동부의 관리·감독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 주는 일화다. 관리·감독기관을 믿을 수 없기에 유가족들이 특별근로감독 참관을 요구했지만 노동부는 전문가만 가능하다면서 거절했다. 이런 현실에서 법이 바뀐들 현장이 달라지겠는가.

그래서 기댈 것은 현장노동자들이다. 김용균님과 동료들은 지난 3년간 28번이나 시설개선 요청을 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청인 서부발전과 하청업체는 그 요청을 묵살했다. 하청업체는 경쟁입찰 구조에서 재계약을 따내기 위해 원청 요구에 순응했고, 원청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면서 무시했다. 위험의 외주화는 생명과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소리를 가로막고 위험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시설개선이 가로막히자 노동자들은 국회에 호소하고 국정감사장에서 증언도 했다. 그런데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권리가 없는 하청으로 남아 있는 한 이런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에 기대를 걸었다.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정책에 따라 노·사·전문가협의체가 운영됐지만, 발전회사들은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자회사로 가라고 압력을 가했고, 협의체는 파행됐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투쟁을 할 수 없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업무가 ‘필수유지업무’라 파업이 불가능하다는 노동부 판단 때문이었다. 파업을 해서는 안 되는 필수유지업무라면서 정규직 전환은 안 된다는 이 모순적인 정부 태도를 보며 노동자들은 손피켓을 들고 “문재인 대통령, 만납시다”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고 김용균님의 죽음 이후 발전소 하청노동자의 작업 실태가 알려지고 있다. 기자들이 밝혀낸 것도 아니고, 노동부가 근로감독으로 밝혀낸 것도 아니다. 현장노동자들이 현장개선을 위해서 자료를 모으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호소했던 그 결과들이 고 김용균님의 죽음 이후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나서야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지금도 김용균님의 동료들은 서부발전의 증거훼손과 진실은폐를 드러내며 현장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 목소리가 너무나 소중하다. 그런데 하청노동자라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회적 관심이 식은 이후에도 노동자들이 현장 문제를 개선할 힘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정규직 전환’이 중요하다. 생명과 안전은 기술이나 제도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서로 소통하며 현장 문제를 개선할 수 있어야 지켜진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있어야 하며,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직접고용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에서부터 왜곡된 고용구조를 바로잡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한다. 정부는 고 김용균님이 손팻말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고자 했던 말, 지금은 동료들과 유가족들이 외치는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라는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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